▲<평균의 종말> 책표지
21세기북스
그런데 평소에 육아책 같은 거 아무 소용없다던, 4살 아들을 키우는 친한 지인이 최고의 육아책을 발견했다며 나에게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일단 'ㅇㅇ하는 법'과 같은 제목이 아닌 것에서 안심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들어가는 말'부터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 책의 주요 전제는 언뜻 보기엔 단순하다. 즉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아이도 동료도 학생도 배우자도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기분을 띄워주려고 꺼낸 빈말도 아니요, 겉멋만 부린 빈 구호도 아니다.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실질적 귀결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그런 과학적 사실이다.
어떤 개개인과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라면 평균은 쓸모가 없다. 아니, 쓸모없다는 말도 과분한 표현이다. 평균이 사실상 한 개인의 가장 중요한 면모를 알아보지 못하게 속일 경우엔 허위 정보를 제공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읽으면서 짜릿함이 느껴진다. 개인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떤 결정을 하거나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늘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눈치보고 있지 않은가. 평균키, 평균 점수, 평균 연봉, 평균 아파트 평수 등등을 신경 쓰면서 비교하고 괴로워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책에서는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개인과 연관시켰을 때 평균은 허위정보를 제공할 뿐이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래.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어'라며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청소년기로 돌아간 기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4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평균의 시대'이며 우리는 모두 '평균주의자'이다. 그 결과 공장은 표준화되었고, 노동자들을 통제 및 감독할 관리자가 생겨났으며, 평균적 학생을 위한 표준 교육에 힘쓰는 공장식 학교교육을 만들어 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번창을 누렸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게 됐다.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이 인상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게 됐고 불리한 배경 출신의 학생들에게 출세 기회가 부여됐다.
그렇다면 '평균의 시대'에 '평균주의자'로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모든 것이 공정하고 공평무사하며 자신에게 맞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그 대가 역시 치르게 했다.
우리는 개개인성의 존엄을 상실했다. 우리의 독자성은 성공에 이르는 길에 놓인 짐이거나 장애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한눈팔기쯤으로 전락해버렸다. 기업, 학교, 정치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개개인성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현실은 누가 봐도 모든 것이 당신보다 시스템이 중요하게 설정돼 있는 상황이다. 회사의 사원들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취급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일한다. 학생들은 꿈을 절대 이루지 못할 듯한 불안감을 안겨주는 시험 결과나 성적을 받아 든다. 우리는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성공에 이르는 바른 길은 한 가지뿐이라는 식의 말을 듣는다.
평균주의는 그 편리함과 효율성 측면에서 분명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는 개인이 중요한 시대이다. 성장이 최우선 과제이면서 이념, 국가, 사회가 개인보다 더 중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개개인성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바로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평균의 시대'를 보내고 '개개인의 과학'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아니 이미 급변하고 있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개개인의 과학'은 필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은 세 가지이다. 첫째, 인간의 중요한 특성인 재능, 지능, 성격, 창의성 등등이 거의 모두가 다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하다는 들쭉날쭉의 원칙. 둘째, 사람의 성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특정 맥락 내에서 고정되어 있을 뿐이라는 맥락의 원칙. 셋째,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과 인간의 발달에서 보편적인 고정 순서가 없다는 경로의 원칙.
이 세 가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경로의 원칙이었다. 성장이나 발달에 있어 하나의 경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언뜻 당연한 사실 같지만, 실제 우리의 사고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가 걸음마를 또래보다 조금 늦게 하면 혹시 문제가 있나 걱정하고, 말을 좀 일찍하면 혹시 천재가 아닌가 설레발 치는 게 보통의 부모들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뱃속에 있는 아이의 몸무게가 몇 그램인지, 머리 크기는 몇 센티미터인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병원에서 태아의 여러 가지를 수치를 알려 주면, 집에 오는 길에 주수별 태아 머리 크기, 태아 몸무게 등을 검색해서 내 아이와 도표를 비교해보고 안심하곤 한다. 나도 모르게 평균주의 사고에 빠져서 내 아이가 평균의 속도로, 정해진 경로대로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캐런 아돌프라는 과학자가 아이들은 정상적인 발달 이정표에 따라 기고 일어서고 걷는다는 기존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돌프가 실제로 조사해보니 몇몇 아기들은 여러 단계를 동시에 나타내거나 여러 단계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거나 아예 일부 단계를 건너뛰기도 했다.
한 예로 '배밀이'는 기기의 필수적인 단계여서 아기들이 걸음마를 떼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단계라는 것이 오래된 믿음이었으나 아돌프가 조사한 아기들의 절반 가까이는 배밀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기어 다니기' 자체를 건너뛰는 경우도 있었다.
걷기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행동이라 명확히 규정되는 고정적 단계를 거쳐서 발달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해진 속도나 순서가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평균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렇다. 어떤 일에도 정답이 하나만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고, 얼마나 많은 삶이 있는데.
임신 기간 내내 주수별 크기, 무게 등을 검색하고 불안해하면서 걱정을 했던 나를 떠올려본다. 물론 평균이 어떤 지표는 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걱정하거나 평균보다 더 높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내 아이는 결코 평균적이지 않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남들과 비교해서, 평균과 비교해서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이 책을 들춰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려한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려운 내 육아에 등불이 되어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한 경우다. 일단 개개인성의 원칙들을 이해하면 당신의 삶에 통제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다. 당신 스스로를 평균 점수가 말해주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21세기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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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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