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외식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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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레스토랑 문을 막 열고 들어서자, 안에서 나를 반기는 한 여인이 있었다. 아내였다. 미리 도착한 아내는 나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예약해둔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아내는 먼저 메뉴판을 건네며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주문하라며 재촉했다. 순간, 아내의 지나친 행동이 미심쩍어 우스갯소리로 물었다.
"여보, 혹시 복권에 당첨되기라도 했소?"
복권 당첨이라는 말에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이 정도론 안 되죠?"
잠시 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그러자 아내는 기분이 좋다며 와인 한 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식사하면서 아내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메인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내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의 의구심이 커져만 갔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이 나올 때쯤이었다. 아내가 가방에서 흰색 봉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웬 봉투?"
내 말에 아내는 다소 쑥스러워하며 봉투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여보, 제가 직접 번 돈으로 당신에게 주는 첫 용돈이에요. 적은 돈이지만 유용하게 쓰세요."
그리고 아내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내는 동네 한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곳에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이 첫 월급날이라며 받은 돈 일부를 남편을 위해 기꺼이 쓴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아르바이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도 그건, 그곳의 근무 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과 조건(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휴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퇴근하면 아내는 항상 집에서 날 반겨주었고, 주말과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했기에 설마 아내가 아르바이트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반대할 내 성격을 잘 아는지라 이 사실을 숨겼던 것 같았다.
문득 지난 일이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 잠깐 거실에서 쉬고 있는 나를 아내는 안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근육이 뭉친 것 같다며 어깨에 파스를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그때는 아내가 집안일을 무리하게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내는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일하는 곳이 어떤 회사이고 그곳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행여, 일 다니는 것을 내가 반대라도 할까 봐 아내는 일 자체가 힘들지 않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제 아내의 나이도 50이 훨씬 넘었다. 결혼하여 지금까지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했다. 그리고 아내는 내 월급만으로 살림을 잘 꾸려왔고 가족의 소확행을 추구해 왔다. 나는 그런 아내가 늘 고마웠고, 감사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주 짜증내는 아내를 보면서 혹시 갱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최근 그런 증상이 사라지고 예전처럼 나를 살갑게 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며 남편인 내가 반대하지 않기를 원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구태여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만, 아내의 건강이 걱정될 뿐이었다.
아내는 일해서 번 돈을 모아 바쁘다는 핑계로 가보지 못한 세계 여러 곳을 다녀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내의 그 꿈이 꼭 이뤄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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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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