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개와 교감하고 있는 남자
차노휘
1. 즐거움의 필요성
아무리 힘들어도 오전 6시 10분이면 숙소를 나서서 달린다. 익숙해진 거리, 인사를 나누게 된 몇 사람들, 나를 반겨주는 개. 조물주가 큰 붓질을 한 것처럼 마티르 강한 새빨간 해무리가 옆으로 펼쳐져 따라오기도, 수묵화 같은 잿빛이 잔잔하게 물들어 가는 하늘과 바다가 그려지기도 한다.
달리다가도 해가 떠오르면 뛰는 것을 멈춘다. 그곳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는 찬란하고 신선하고 고귀한 기운을 들이마신다. 그 싱싱함에 오늘을 살 기운을 얻어 파닥거린다.
어떤 날은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서 슬쩍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슬퍼서일까. 힘듦과 서운함 혹은 깊은 회한 같은 것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위로일까. 가슴이 부풀어 올라 되돌아갈 때는 자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는 구름 속에 가려 있고 해무리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해를 볼 수가 없었다.
"꼭, 교육생 한 명 더 데리고 가는 것 같아요? 지금 몇 깡이세요?"
그날 오전 다이빙이 끝났을 때 줄리아가 내게 물어왔다. 내가 35깡이라고 하자 "50깡까지는 봐줄게요. 그동안 규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는지 익히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였던가, 다이빙이 커다란 짐 가방처럼 여겨지던 것이. 강사나 교육생들 눈치 보기에 바빴다. 실수 하나라도 하면 어떤 잔소리를 듣게 될지, 내심 고민했다. 조나단과 줄리아는 대체적으로 과묵했다. 나는 나를 자책했다. 주눅 들다 보니 계속 실수만 되풀이했다. 어떻게 해서든 여유를 가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 같았다.
나는 이메드와 처음 펀 다이빙을 갔을 때의 행복함을 떠올렸다. 그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아야 했다.
2.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