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문화재단과 진주문화연구소는 <진주문화를 찾아서>로 2001년 <논개>를 낸데 이어 이번에 20번째로 <진주성 촉석루>를 펴냈다.
윤성효
'진주문화를 찾아서' 책자가 20여년만에 20번째 나왔다.
남성(南星)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과 진주문화연구소는 최근 <진주 근대화에 이바지한 호주 선교사 커를과 그의 동료들>(조헌국 글, 김신곤 사진), <진주성 촉석루>(황의열 글, 유근종 사진)를 한꺼번에 펴냈다.
이 두 책자는 '진주문화를 찾아서' 19번째와 20번째로 출판사 '한국문화사'를 통해 나왔다.
'진주문화를 찾아서'는 남성문화재단이 기금을 출연하고 진주문화연구소가 기획해 펴내고 있는 책자다. 2001년에 나온 첫 번째 책자는 고 김수업 교수가 쓴 <논개>(사진 김용철, 지식산업사)였다.
당시 '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는 "새천년의 문턱을 넘어 첫발을 내딛으면서 우리는 진주문화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고 했다.
편간위원회는 "우리가 진주문화를 찾아서 나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남성문화재단에서 나왔다"며 "이 재단이 진주문화의 지킴이며 지렛대임은 진주사람들이 두루 아는 사실이거니와, 우리가 진주문화를 찾아서 나선 뜻이 재단이 이루려는 뜻과 어우러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고 김수업 교수는 한용운이 썼던 "논개의 애인이 되어 그의 묘에"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논개에게 노래(시)를 바쳤으나 한용운이야말로 논개의 사당에 노래를 바칠 자격이 넉넉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는 눈물을 흘리며 논개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며 "한용운은 논개와 더불어 서로 '금석 같은 굳은 언약'을 했다 한다. 그런데 논개는 언약을 저버리지 않았으나 자기는 저버렸다 한다. 논개는 지키고 한용운은 저버린 그 언약이란 과연 무엇일까"라고 했다.
이후 '진주문화를 찾아서'는 계속 나왔다. <남명 조식>(허권수 글, 김한수 사진), <형평운동>(김중섭 글, 김우태 사진), <1862년 진주농민항쟁>(김준형 글, 김한수 사진), <진주 옛 이야기>(안동준 글, 정현표 사진), <진주의 선사․가야문화>(조영제 지음), <진주의 차(茶)맛>(정헌식 글, 마상철 사진), <진주팔경>(강희근 글, 김용철 사진)이 차례로 나왔다.
그리고 <진주오광대 탈놀음>(정병훈 글, 리영달 사진), <진주의 지질과 화석>(서승조 지음), <그대로 박생광>(김수현 지음), <진주 사투리>(조규태 글, 박현규 사진), <진주 역사>(김해영 글, 김용철 사진), <진주성 전투>(지승종 글, 김용철 사진), <명창 김선유>(최난경 지음), <진주의 옛 건축>(고영훈 지음), <진주성 이야기>(김준형 지음), <복자 정찬문>(박용국 글, 유근종 사진)이 뒤를 이었다.
현재 '진주문화를 찾아서 편간위원회'는 고영훈 경상대 교수(건축학)와 김준형 경상대 명예교수(역사교육), 김중섭 경상대 교수(사회학), 리영달 진주문화사랑모임 명예이사장, 안동준 경상대 교수(국어교육), 정병훈 경상대 교수(철학), 조규태 경상대 명예교수(국어교육)가 참여하고 있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책자 발간은 20여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동안 출판사가 '지식산업사', '문화고을', '알마'를 거치기도 했다.
편간위원회는 "진주문화를 찾아서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의 열의와 후원 덕분"이라며 "긴 세월 끊임 없이 발간 비용을 맡아 주시며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도록 독려해 주시는 것은 진주사람이라는 특별한 마음가짐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편간위원회는 "진주의 역사, 문화, 인물 등에 대하여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처음 마음 그대로이다"고 했다.
앞으로 나올 책자로는 <진주 문인>, <진주 음식>, <진주 비단>, <화가와 명필>, <진주 옛노래>, <진주의 정자들> 등 많다.
조헌국 "교육도시는 선교사 영향" ... 황의열 "촉석루에 사람이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