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속 아들 모습 가리키는 김길자씨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에서 사망한 '고등학생 시민군' 고 문재학(당시 16세, 광주상고 1)씨 어머니 김길자(80)씨가 시신들 사진 속에서 아들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권우성
광주시민들은 이날도 사태 수습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습위 대변인 김성용 신부가 계엄사를 찾아가 부사령관에게 호소했다.
앞으로 우리는, 아니 도민은 네 발로 기어다녀야 한다.
어찌 사람처럼 두 발로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짐승이다.
공수부대는 우리 모두를 짐승처럼 끌고 다니면서 때리고 찌르고 쏘았다. 공수부대의 만행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또 폭도라고 왜곡된 보도를 하였으니 이 사태가 수습된다 해도 우리는 모두 폭도가 될 것이 아닌가?
우리 도민 모두가 폭도요, 새로 태어난 자식도 폭도의 후손이 될 것이다. 외지에서 누가 어디서 왔소? 하고 물으면 전남이 고향인 사람들은 무조건 폭도로 몰릴 것은 사실이 아닌가? 자, 이러한 상태 속에서 단 한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책임 있는 당국자 즉 국가의 최고원수인 최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사과하여야 한다. 보상과 복구를 하여야 한다. 보복을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온 국민 앞에 천명하여야 한다.
이 길만이 무장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요. 원칙적인 해결방법이 될 것이다. 이 조건이 수습위원회의 결의요, 온 전남도민의 바람인 것이다.
우리는 피의 값을 받아야 한다. 받지 못하면 다 죽어야 한다. 그리고 수습위원회 대표가 최대통령을 직접 만나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계엄사 당국은 빨리 만날 수 있는 길을 주선해 달라. (5ㆍ18광주민중항쟁자료집) (주석 4)
'허수아비 최규하'는 광주의 소리를 듣지 않았고, 광주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자구책을 강구하며 미구게 닥칠 '소탕전'을 앞두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이같은 상황에서 5월 25일 '광주시민일동'의 명의로 「광주시민 여러분께 - 23~26일까지의 시민결의」라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우리 80만 시민이 똘똘 뭉치면 분명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떳떳하게 민주사회를 안겨주도록 우리 끝까지 투쟁합시다."라는 내용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