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책밥상
글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29쪽)
열두 살 큰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늘 글살림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스스로 한글을 일찍 깨쳤고, 뭔가 끄적이기를 무척 즐겼습니다. 큰아이가 터뜨리는 놀라운 말을 아버지가 수첩에 꼬박꼬박 옮기기를 열 해를 하다가, 이제는 큰아이 스스로 '제(큰아이) 말'을 제 손으로 제 공책에 적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하루를 남겨요"입니다. '일기'라는 말을 굳이 안 씁니다. 굳이 안 쓸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가 처음 맞닥뜨리기에는 매우 힘겨운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일기'입니다. 한자말이라서 아이한테 높은 울타리가 되는 말은 아니라고 여겨요. '일기'라고 툭 내뱉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하나도 알기 어려울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38쪽)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하루를 남겨요"란 말을 쓰는 까닭은 수수해요. 말 그대로이거든요. "자, 오늘 하루를 남겨 볼까?" 하고 말합니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이든 좋습니다. 마음에 남고 몸에 새긴 이야기를 스스로 공책에 옮깁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밥보다 일기>(서민, 책밥상, 2018)는 무엇보다 "일기를 쓰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은 하나를 통틀어 오롯이 '일기를 이렇게 쓸까요?' 하고 묻습니다. 다만 이 책은 어린이나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지 않습니다. 적어도 서른 살 즈음 눈높이에 걸맞다고 느낍니다. 또는 마흔 살 언저리에 읽을 만하구나 싶어요.
이참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날 일기를 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73쪽)
이 말을 한 이유는 남이 보기에 사소한 일들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5쪽)
학교에서는 '일기'라 하고, 군대나 회사나 기관에서는 '일지'라 합니다. 말 그대로 "그날그날 있던 일을 적는 글"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본다면 "하루 쓰기"이기도 하면서 "그날 쓰기"라고도 할 만해요. 살을 붙인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요, 그날그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삶을 쓰기라 할 테지요.
글쓴님이 <밥보다 일기>에서 살짝 짚기도 합니다만, 꾸며야 하는 글이 아닙니다. 예뻐 보이거나 멋져 보여야 할 글이 아닙니다. 남한테 자랑하거나 드러내려고 쓸 글이 아닙니다. 누리집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이라 하더라도 '남한테 보이려는 뜻'에 앞서 '내가 언제라도 다시 읽고서 삶을 스스로 되새기려고 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