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김진균씨와 한교조 조합원들개정 강사법은 시행됐지만, 비정규 교수가 하던 강의를 통폐합해서 전임교원에 몰아주거나, 편법 고용을 하는 등 이 법을 피해가려 하는 대학들이 있었다.이런 편법들이 이어지면, 일차적으로는 비정규 교수들이 고통 받겠지만, 궁극적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대형 강의가 많아지는 등 교육의 질과 학생 서비스의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비정규 교수 노동조합
일반 기업체의 경우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69% 정도(2017년 기준)의 임금을 받지만, 비정규 교수의 경우는 임금 격차가 훨씬 커 어떤 경우엔 정규직의 6%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강의 시간뿐 아니라 준비 시간까지 포함하여 노동 시간 대비 임금을 계산해 보면 사실상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비정규 교수들이 많다. 그리고 그동안 한 학기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어 방학 중에는 수입이 없었으며, 고용 불안으로 미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임용의 객관적 지표도 없어서 담당 학과장과 전공분야 전임교원이 마음대로 임면권을 휘두를 수 있는 구조였다.
2010년에는 조선대에서 강의를 하던 서정민 박사가 담당 전임 교원의 횡포와 불안한 신분을 폭로하는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전임 교수 임용을 이유로 54편의 논문을 대필했고, 1억 5천만 원의 돈까지 요구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유서의 사회적 파장은 컸다. 이 사건 전후로 비정규 교수의 자살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비정규교수 직군에 머무는 기간이 기약 없이 늘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아름답고 완벽한 강사법? '강사공채'는 거대한 블랙코미디 http://omn.kr/1m15y)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등교육법 개정안(이하 시간 강사법)을 입법했다. 이 법안은 시간 강사의 '교원' 신분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교원으로서의 강사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비정규 교수 중 절반 정도가 법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한교조는 이 개정안의 폐기 운동에 나섰다.
2018년 촛불 정부에서 기존 개정안의 조항을 개선하기 위한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를 만들었다. 정부와 국회, 대학과 강사 단체가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에서 합의한 사항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고등교육법 개정안(이하 개정강사법)이 국회에 다시 상정되었다. 그러나 여야의 갈등으로 법안 통과가 미뤄졌다.
오랫동안 법안 통과가 미뤄지자 김진균씨를 비롯한 한교조 활동가들은 2018년 내내 개선된 법안 통과를 위해 거리 위로 나왔다. 국회 앞에서, 시행령을 만드는 청와대 앞에서, 교육부 앞에서 농성을 했다. 여름에는 모기와 더위에 시달렸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엔 추위와 싸워야 했다.
2011년 발의 후 19차례의 협의를 거쳐 마침내 2018년 12월 개정강사법이 공포되었다. 2019년 8월부터 시행 중인 개정강사법의 내용은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와 노동자성을 인정, 건강보험을 제외한 3대 보험 가입 및 퇴직금 지급, 6개월 단위였던 계약을 1년 단위로 할 것, 3년간 재임용에 필수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을 포함한다. 상당히 미흡하긴 하지만 기존의 개악 개정안보다는 진전된 법안이었으며, 무엇보다 대학 당국이 포함된 노사정 합의라는 점이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신들이 합의한 이 법안을 놓고 대학에서 또 다른 꼼수를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 교수가 하던 강의를 통폐합해서 전임교원에 몰아주거나, 편법 고용을 하는 사례들이 생기고 있어 갈 길은 멀다. 이런 편법들이 이어지면, 일차적으로는 비정규 교수들이 고통받겠지만, 궁극적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대형 강의가 많아지는 등 교육의 질과 학생 서비스의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공공성 회복의 마지막 기회
"물론 강사법에 의한 안정된 강사제도를 운영하기 힘들 만큼 재정이 열악한 대학들도 있습니다. 그런 곳은 정부의 재정 지원 등 대책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수도권 대학의 경우에는 대학들이 몇천 억에서 많게는 1조를 넘나드는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일부 사립대가 전체 적립금 가운데 15%에 달하는 1조 4천억 원 정도를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거나 수익을 얻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대학들은 개정 강사법 때문에 재정부담이 된다며 교원 수를 줄여나가려고 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적립금은 적립할 때 목적성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데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건물 투자 같은 목적성을 부여했다는 거죠. 그러나 이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사회를 열어서 풀어내면 얼마든지 적립금 용도를 바꿀 수 있는데 말이지요.
매년 주식투자로 돈을 날린 대학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일은 벌이면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 재정 부담을 얘기하면서 강사 수를 줄여나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부 대학에서 '행정비용'이란 얘기도 하는데, 강사들이 당국에 밉보여도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부담을 '비용'이란 말로 표현한 거죠. 바로바로 해고할 수 있고 티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마음 편한데 말입니다."
김진균씨는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를 총장이나 사립대학 재단 등 대학 관계자들의 '기능적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교육 기관을 운영한다는 생각보다는 수익과 경쟁 효율을 앞서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학 평가가 재정지원과 연계되면서 평가 지표가 정량화된 것도 대학의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수치화된 평가 기준에 맞추다 보니, 질보다는 눈에 보이는 양적인 조건을 맞춰가는 데 급급해져 버린 것이다. 고 서정민 박사가 54편이나 되는 논문을 대필한 것도 논문에 대한 질적 판단보다는 몇 편 썼는가를 더 중요시하게 된 구조와 관계가 깊다.
"한국에서 대학은 공공성을 잃어버렸어요. 대학 재정의 많은 부분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고, 따지고 보면 정부 장학금도 공공의 자산이잖아요. 그런데 이기적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학생 개인은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저 내가 아르바이트하고, 부모가 대출받은 돈으로 대학을 다닌 것만 생각하잖아요. 그러니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이 되기보다는, 그동안 나와 가족이 투자한 것을 회수하겠다는 생각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대학 교육 종사자들이 한 번 크게 각성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해요. 또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트들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텐데, 대학 교육 종사자들마저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선 그들이 앞장서서 이기적 경쟁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점점 더 경쟁에 깊이 상처받은 엘리트들이 양산되고 있는 거고요. 이런 시간이 흘러갈수록 각성의 기회는 멀어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들도 오직 입학 성적과 졸업 때 취업률에만 관심을 가지죠. 대학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대학이 학벌주의, 서열주의 등 사회적 폐단의 적폐 세력이 되어버린 거죠. 대학 서열화는 노동시장의 열악함을 만들어내고, 노동시장의 열악함은 다시 대학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는 다시 초중등 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꾸려면 모든 대학에 안정적 재정 지원을 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같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정부가 대학에 투자하도록 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공동체로부터 수혜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해요."
김씨는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 지수, 그리고 빈곤층의 경우는 우울증 진단조차 받지 못해 자살률로 우울증 지수를 가늠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걱정했다. 그리고 강사직군도 소외 계층에 속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교조에 대해 '당신들 유학 갔다 오고 박사과정 마칠 만큼 유복한 사람들 아니냐?',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 강사 자리에 고착된 책임을 왜 사회에 묻느냐?'는 비난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을 하는 이들 역시 경쟁 사회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김진균씨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무한경쟁 속에서는 누구도 '안전한 승자'가 될 수 없어요. 끊임없이 경쟁만 강조하다 보니, 우리 사회는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헬조선'이란 말도 나온 거고요. 그러니 한교조를 비난하는 분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이 겪고 있는 고통과, 비정규 교수들이 겪는 고통의 뿌리는 같습니다.
우리 비정규 교수들은 자신만 성공하려고 사기를 치다가 적발된 사람이 아니라, 학문 연구와 고등 교육에 뛰어들었다가 이 덫에 걸린 사람들이고요. 사회적 공공성의 실현은 경쟁이나 비난이 아닌, 시민들 간의 든든한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함께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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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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