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커 사이에 구운 마시멜로와 초콜릿을 끼워 먹는 '스모어(s'more)'
김수진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이 좀이 쑤셔 못견디는 아이 마냥 자꾸만 밖으로 나가 바비큐와 캠프파이어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캐나다의 겨울은 장장 반 년 가까이 지속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 국경과 비교적 가까운 남쪽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11월부터 시작된 겨울이 3월까지 이어진다(심지어 4월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 꽃피는 춘삼월에 결혼했는데 이곳에서 맞는 결혼기념일에는 종종 눈이 내린다. 겨울 평균 기온이 한국보다 많이 낮은 건 아니지만, 아주 추운 날은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고 체감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아 영하 40도를 밑돌 때도 있다.
추위보다 더 지치는 건 바로 눈. 한국에 살 때는 "와, 첫눈이다! 데이트해야지!" 했었지만 이곳에서는 "오마이갓, 벌써!" 한다. 아침에 눈을 떠 하얗게 변해버린 겨울왕국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는 낭만 아닌 절망이 스친다. 눈을 치우고 들어오는 남편의 얼굴이 십 년은 늙어 있다.
시야가 뿌예질 만큼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치는 스노우스퀄(snowsquall), 땅이나 차에 달라붙어 얼음이 되어버리는 얼음비(freezing rain), 폭설 혹은 혹한 경보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거나 스쿨버스 운행이 취소되는 일도 종종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름아, 오기만 해봐라. 내 원 없이 즐겨주마' 하는 심리가 생길 수밖에. 이곳 사람들이 "뷰리풀 웨더!(beautiful weather)를 외치는 5월부터 10월까지, 특히 6월부터 9월 초까지 여름 곳곳에서 바비큐 냄새가 진동하는 이유다.
아뿔사,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캐나다는 역사가 150년 남짓으로 짧다. 게다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 중동,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은 반면, 막상 '캐나다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은 몇 안 된다.
그러니 바비큐도 여름의 아름다운 날씨를 누리기 위함이지 거기서 캐나다만의 특별함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렇긴 하지만 '특색 있는' 여름음식 소개라고 했는데, 아무리 팩트라 하더라도 '캐나다의 여름 음식 바베큐를 소개합니다!' 하려니 어째 좀 민망하다.
'15년을 살았어도 내가 모르는 캐네디언들만의 여름음식이 있을지도 몰라' 작은 희망을 품고 검색을 해 보기로 했다. 'summer menus'로 검색하니 어라, 뭔가 있긴 있다. 요리 잡지와 요리 채널에서 여름 레시피들을 소개해 놓았다. 뭔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던 나는 아뿔싸, 제대로 뒤통수 한 대를 맞고 말았다.
- 부엌에 있기가 너무 더운가요? 이 음식의 절반은 야외 그릴로 만들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불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 오븐에서 떨어지세요. 이 요리는 불이 필요치 않습니다. 시간도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 야외에서의 저녁식사보다 좋은 건 없죠. 부엌에서 나가 그릴을 켠 뒤 손쉽고 맛난 향연을 즐기세요.
- 전부 다 그릴 위에서 요리되는 이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야외를 즐기세요.
- 이 간단한 토스카나 요리들로 바구니를 채워 공원에서 완벽한 일요일 소풍을 즐기세요.
- 여름철 식사는 무조건 쉬워야죠. 재빨리 만들어지는 이 요리에는 익숙한 재료들의 예기치 못한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 이 샌드위치는 들고 나가기 간편해서 잔디 위 식사에 적합하답니다.
추천 레시피와 함께 적혀 있던 문구들이다. 문득 깨달음이 일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어떻게 어디에서 요리하느냐'였던 것이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날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 야외에서 먹기 편한 음식, 더 많은 시간을 야외활동에 할애하기 위해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 비슷하거나 반복되는 표현들을 보며 그런 음식이 여름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