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5개 대형병원, 대전과 논산의 3개 개인병원, 서울과 태안의 3개 한의원을 전전했지만, 끝내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코의 불편과 글을 쓰지 못하는 공황 사태, 과도한 비용 지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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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술 후 열흘가량 지났을 때 내 코에서 후비루(코가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다시 A의료원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내시경 관찰을 한 의사가 "콧속에 고름이 잡혀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지만, 난 곧 A의료원을 떠나게 돼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재수술을 한 것 때문에 경위서를 썼다고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내서 새로 부임한 이비인후과 과장은 내시경 관찰을 하고는 내 콧구멍이 비정상적으로 너무 넓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약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약을 복용하면서 하루 세 번씩 식염수로 코 세척을 하고, 코 점막에 바르는 약도 열심히 사용하면서 코가래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베트남 전쟁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장 기능을 잃어 2016년부터 복막투석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복막투석 환자로서의 불편보다도 코를 다친 데서 오는 불편이 더욱 큽니다. 정말 너무 고생스럽습니다. 치료비도 엄청 많이 듭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무시로, 또는 쉴 새 없이 발생하는 코가래를 고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백방으로 뛰었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서울의 5개 대형병원, 대전과 논산의 3개 개인병원, 서울과 태안의 3개 한의원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고, 코의 불편과 글을 쓰지 못하는 공황 사태, 과도한 비용 지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병고 속에서 4년이 지나는 동안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습니다. 몸의 건강이 전체적으로 망가져 버렸고, 폭삭 늙어버렸습니다. 이태 전까지는 차 운전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걸음도 제법 걸었습니다만, 지난해부터는 차 운전도 하지 못하게 됐고, 올해 들어서는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잦은 코가래와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불편 때문에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외출도 하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소일합니다. 이런저런 여러 모임에도 불참하게 됐고, 성당 미사에도 참례치 못하며 적막하게 삽니다. 정말 적막강산이 따로 없습니다.
잘 걷지 못하게 된 데에는 수면제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코가래 때문에 도저히 잠이 들지못하고, 밤새 생고생을 하게 되니 매일 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졸피드' 외에 보조수면제들도 복용하는데, 용케 코 질환을 고친다 해도 죽는 날까지 수면제를 복용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하여간 수면제 덕분에 네댓 시간 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입 안 곳곳에 묻어 있는 코가래를 물을 마셔 적신 다음 여러 번 뱉어내는 일이 하루 생활의 시작입니다.
나는 내 코 질환이 끝내 고칠 수 없는(?) 병임을 이미 2018년 서울에 있는 한의원 진단과 2019년 서울의 대형병원 C교수의 태도에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A의료원 이비인후과의 새로 온 의사가 이런저런 약물 치료에도 효과가 없자 하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셔서 외과적 수술을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 한의원의 원장은 내시경 관찰 후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코의 원래 구조에 변형이 생겨서 어떤 치료든 물리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열심히 치료를 해도 치료 효과는 50% 정도입니다. 그래도 치료를 하시겠습니까?"
그 50% 치료 효과가 너무 모호하기도 해서, 나는 두 달 치료비 126만원을 소비하고 그 한의원 진료를 접었습니다.
대형병원 C교수는 처음에는 수술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약물 치료에도 효과가 없고, 내가 간곡하게 수술을 요구하자 마지못해 내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수술을 하면서 그 교수는 "수술하길 잘했네요. 고름이 있네요"라는 말을 했고, "숨어 있는 고름도 있네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아제 살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술 효과는 한 달 가량 유지되었습니다. 다시 코가래가 발생하여 또다시 대형병원을 찾았을 때 C교수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다시 수술을 할 필요가 없지만, 만약 또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면 저는 손대지 않을 겁니다."
박절하게 느껴지는 그 말 속에는 어떤 '암시'가 분명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다시 수술을 해봤자 '도로아미타불'이 될 거라는 얘기였고, 내 코 질환은 고칠 수 없는 '장애'가 된 사실을 내비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병원에 그만 오시라는 그의 말에 따라 대형병원 진료를 접으면서 나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심정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의 또다른 대형병원과 논산의 한 개인병원, 또 대전의 한 개인병원에서도 진료를 받았지만, 끝내 희망을 건질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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