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꼭 음식을 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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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첫 명절에 시가에서 음식을 간소하게 하는 걸 보고 놀랐다. 2년 후 동생이 결혼하고 친정 엄마가 차린 음식을 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제사도 안 지내는 집에서 각종 전에 나물에 통닭까지(대체 통닭은 왜 하는 건지).
우리 시가의 2배가 넘는 음식을 엄마 혼자 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가에서 올라온 사위(딸 아니고 사위)가 명절 음식 느끼한 거 먹고 왔다고 해물탕까지 끓였다. 정말 못 말린다.
어릴 때도 그랬다. 외가 식구들끼리 콘도나 어디에 놀러가면 외삼촌이랑 이모들은 그냥 오는 데 엄마는 꼭 음식을 해갔다.
"아줌마, 그거 양념 통닭 해서 형제들이랑 먹을 거니까 이쁘게 썰어줘요."
시장 닭집에서 닭을 사 와서 튀긴 다음 당시 유행하던 양념 통닭 양념을 직접 만들어서 콘도에 가져갔던 엄마. 7남매가 자신의 반려자와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모이는 거라 엄청난 수인데 그 사람들이 다 먹을 만큼 양념 통닭을 해갔다.
"누나 김치 해올 거지?"
나중에는 아예 삼촌들이 김치를 주문하거나 먹고 싶은 걸 말하는 상황으로 갔다. 문제는 엄마도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프다는 거다. 손가락 관절도 아프고 옷가게 하면서 짐을 나르느라 어깨는 망가졌고 족저근막염까지 왔다.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주세요
"나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할 거니까 니들이 알아서 해."
올여름 고창에 갔을 때 엄마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여름 휴가 대신 동생네와 우리 가족, 엄마, 이렇게 고창에 있는 외가 시골 별장에 갔다(별장이라 쓰고 외조부가 살던 집이라 읽음). 차 막힌다고 새벽 3시에 출발하는데도 엄마는 닭을 3마리나 직접 튀겼다.
닭만 튀겼을까? 소고기 장조림, 전복 장조림, 간장게장, 양념게장, 멸치볶음, 진미채 볶음, 열무김치, 묵은지... 끝없이 나오는 반찬의 행렬. SUV 동생 차 트렁크에 테트리스 하듯 쌓아왔다. 그러고선 손가락 아프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단다(제발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겠다는 선언이 무색하게 엄마는 시장에 가서 오징어 사 와서 볶고 수육을 하고 또 일을 한다. 고창에 있던 4박 5일 동안 엄마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한 건 딱 한 끼였다.
"지은아, 나 손가락이 너무 아퍼. 의성이네 애들 못 볼 거 같아. 어떻게 하냐."
동생네 7살, 4살 두 아이를 봐주고 있는 71세 엄마가 견디다 견디다 너무 아픈지 전화를 했다. 최근 동생네가 담보 대출로 엄마네 아파트 옆 동에 집을 샀는데 엄마는 애를 봐주느라 너무 아프단다. 동생이랑 잘 얘기해 보라고 했다.
며칠 후 동생네 집들이에 갔더니 해물탕, 잡채, 나물, 간장게장에 각종 밑반찬까지 엄마표로 한정식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나한테 아프다고 우는 소리 한 사람이 이렇게 음식을 해내니 참나...
"식구들 먹이려고 하는 건데 아파도 해야지.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건데."
쫌 이상한, 그래서 다정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