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군사적 원조를 받은 뒤 조선에는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심화되었다. 조선은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조였던 명나라를 신주 모시듯 받들면서 스스로 '소중화'를 자처하다가 병자호란을 맞았고 끝내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어야 했다.
그로부터 다시 350여 년이 흘러 6.25 전쟁 때 미군의 참전으로 패배를 모면한 뒤 남한에는 숭미주의(崇美主義)가 깊게 뿌리내렸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휘날리는 우리나라의 집회 현장 그리고 주민센터, 국방컨벤션, K-water, aT, 플랫폼 등 정부 공공기관마다 만연된 영어 명칭은 이 땅에 짙게 드리워진 숭미주의의 그림자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 질서의 영원한 패권국, 슈퍼파워로 군림할 것 같았던 미국은 트럼프에 이르러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나마 미국이 이제까지 지키려 애쓰던 '도덕적 기치'를 내려놓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렇다고 하여 국제사회에서 지금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조건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다만 현재 국내에 조성된 반중 정서는 트럼프의 극단적 반중 포위 전략과 그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정책의 상승 작용으로 증폭되어 과대 포장된 이미지가 강하다.
베트남, 과거의 적 미국과 협력하여 중국에 대항하다
2010년 8월 8일,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베트남의 중동부 항구도시 다낭 부근의 남중국해(중국명 南海)에 도착하였다. 워싱턴호는 양국 해군이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하는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다. 다낭은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로서 미국은 지난 세기 60년대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곳에 대규모 미군 기지를 구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다낭은 중국과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수역에서 베트남이 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지난 1970년대 말 중국과 치열한 국경 전쟁을 벌였었고,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서도 80년대 말 전쟁을 치른 바 있다. 그러한 베트남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함대를 끌어들여 손을 잡았다. 중국은 베트남이 과거의 원수 미국과 같은 배를 탈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국가 이익을 반드시 수호하려는 베트남의 의지는 미국과 한 편이 되어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까지 구사했다.
'전향적' 자세가 전혀 없는 일본과의 교류, 신중해야
급변하는 현 국제 정세에서 베트남처럼 국제관계를 다변화하고 실리적 접근으로 미국을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유연하게, 그러나 원칙을 견지하면서 '합종'하고 '연횡'하는 '균형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메콩강 유역 5개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격상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정부는 일본과 외교 복원을 암중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전향적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박근혜 시기 '위안부 문제'의 졸속 타결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모쪼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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