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에 호응한 동작리 사람들1907년 당시 과천군 상북면 동작리 사람들 65명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국채보상운동에 호응하여 합 24원 55전의 성금을 모아 기탁하였다.
대한매일신보사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을 당했던 여운택 외 3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7년부터 일본 오사카 법원에서 시작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21년 만에 승소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대신 "대한민국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2019년 7월부터 일부 반도체 소재 품목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2019년 내내 전국적으로 일어난 운동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었는데, 이는 112년 전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도 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이 운동은 전 국민의 주권 수호운동이었다.
이에 기탁되는 의연금을 보관하고 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통합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같은 해 4월 8일 대한매일신보사에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치, 한규설·양기탁 등을 임원으로 선출하였다. 이 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 말까지 보상금을 의연한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까지의 보상금액은 230만 원 이상이었다.
이 국채보상운동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시기에 국채를 갚기 위하여 국민의 약 25%가 자발적으로 벌인 모금 운동이라는 점, 이후 이 운동은 하나의 효시가 되어 중국(1909)·멕시코(1938)·베트남(1945)의 국채보상운동에도 영향을 끼친 점 등이 높이 평가되면서 국채보상운동기성회취지문을 비롯한 총 2475건의 기록물이 2017년 10월 31일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공식 지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