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할머니 작가의 그림, 나이보다 더 놀라운 건

직접 뽑아본 '로즈 와일리 전' 관람 포인트

등록 2021.03.17 10:40수정 2021.03.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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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할머니 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녀에 대한 경외감을 더할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한 명의 창조적인 미술가로서 그녀를 설명하기에 방해가 되는 사족인 듯도 하다. 그만큼 그녀의 독보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세계는 온전히 그 자체로 인정받고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예술의 전당에서 3월 28일까지 이어지는 '로즈 와일리 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 몇 가지로 정리해봤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Rose Wylie)> 전 전경.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진 연작이 전시장을 압도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Rose Wylie)> 전 전경.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진 연작이 전시장을 압도한다. 조유리
 
1. 크다
절대, 사이즈가 작은 작품의 예술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키보다 큰 작품을 그린다는 것이 화가의 신체에 어떤 부담을 줄지, 게다가 커다란 캔버스 두 개 이상을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심적 책임감을 동반할지 감상자로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에, 그녀의 작품 사이즈에 놀라움을 표할 수 밖에 없다.


2. 자유롭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커다란 캔버스 두세 개에 걸쳐 거침없이 뻗어 나간 붓질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화가의 감정이 느껴진다. 화가는 분명 큰 캔버스를 놀이터 삼아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며 캔버스 한 개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감정으로 또 이어 붙이고, 또 이어 붙이기를 계속했을 듯하다. 그만큼 화가는 캔버스 위에서 살아있음을 느꼈으며 그 생동감은 작품을 통해 여실히 전달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모습이 로즈와일리의 붓을 통해 독창적으로 되살아난다. (로즈 와일리전 전시 작품)
엘리자베스 1세의 모습이 로즈와일리의 붓을 통해 독창적으로 되살아난다. (로즈 와일리전 전시 작품) 조유리
 
3. 친숙하고도 참신하다
형이상학적인 철학과 고집스러운 소재나 주제에 천착하지 않는 것이 화가의 매력이다. 작품의 영감은 일상생활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그 소재는 매우 대중적이다. 화가는 역사적 인물, 영화 이야기, 축구 경기(심지어 손흥민 같은 축구 스타까지!), TV 프로그램 등 친숙한 아이템을 작품 소재로 삼지만 이들은 단지 영감일 뿐이다. 화가는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그 친숙함이 진부함으로 왜곡되지는 않는다. 화가의 표현 방식은 경쾌하고 따뜻하며 신선하다.
 
  로즈와일리가 구현한 축구 선수 손흥민의 모습. 이번 전시를 계기로 손흥민은 로즈 와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로즈와일리가 구현한 축구 선수 손흥민의 모습. 이번 전시를 계기로 손흥민은 로즈 와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조유리
 
4. 쉽고 직관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을 보면 어떤 소재를 다룬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쉽고 재미있다. 그 안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페인팅과 세라믹으로 표현한 작품에서 화가는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라고 먼저 선을 긋는다. 책을 읽든, 그림을 보든, 그 안에서 심오한 메시지를 찾으려 애쓰느라 눈앞의 현상을 놓치는 경우를 생각하면 솔직하고 직선적인 화가의 작품 앞에서 민망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노래부르는 북한 아이들을 구현한 작품. (로즈 와일리전 전시 작품)
노래부르는 북한 아이들을 구현한 작품. (로즈 와일리전 전시 작품) 조유리

5. 희망적이다
작품들만으로도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럼에도 화가가 '86세 여성'임을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 세상엔 충분히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희망, 그리고 그 실체를 눈앞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 하지만 전시 마지막, 벽면에 쓰여진 화가의 말은 왠지 모를 아픔으로 다가온다.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주부로 살아오다 나이 45세에 작품 생활을 시작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자주 나이에 대한 편견에 부딪쳐왔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해주는 듯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그녀의 작품뿐 아니라 그 작품을 탄생시킨 그녀의 삶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은 곧 그녀라는 것을. 그녀가 곧 작품이라는 것을.
 
    전시장 마지막 벽면에 적힌 로즈 와일리의 메시지.
전시장 마지막 벽면에 적힌 로즈 와일리의 메시지.조유리
#로즈와일리전 #예술 #미술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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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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