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불화하고 연대하며 나로 살아간다

[페미워커의 마주보기⑤] 어쩌면 이상한 몸

등록 2021.07.27 15:18수정 2021.09.2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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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은 2021년을 맞아 힘들었던 한해를 거치고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준 책 6권을 선정했습니다. 책을 함께 읽고, 코로나19 이후 단절이 부각된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페미워커의 시선으로 담아냅니다.[기자말]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공감 지음, 오월의 봄 펴냄)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공감 지음, 오월의 봄 펴냄)오월의 봄
 
내 자리에서 내 생각을 알리고 이가 받아들여지기를 꿈꾼다. 그러나 존엄과 권리는 특정인들에게만 부여되곤 했다. 자본주의사회는 자본을 창출해 가치를 증명하길 강요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신체에 손상이 없는 이들을 기준으로 노동환경을 조성했다. 1) 

고장 없이 일정한 속도로 노동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돌봄이 필요한데, 사적영역으로 밀려난 돌봄의 공백을 여성들이 채워왔다. 비장애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여성은 '생산성이 없고 성역할 수행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이로 여겨지고, 재활이나 '자기극복'을 통해 기준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보이길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한들 그들에게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영감포르노로 비장애인들을 각성시키는 역할을 부여할 뿐이다. <어쩌면 이상한 몸>에는 자신을 무력화시키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주체답게 살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해온 장애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분투하는 그녀들의 삶의 기록을 읽고 있자면 그동안 당연시되어왔던 인식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장애여성공감 인권상담 내 주변의 친밀한 통제자
장애여성공감 인권상담 내 주변의 친밀한 통제자 장애여성공감
 
실제로 많은 장애여성들은 청약, 장애수당 등을 통해 원가족의 생계를 보장하고 있고, 가정 내에서 가사, 돌봄을 하고 있다. 2) 

그러나 장애여성의 이러한 수행은 가려지고, 장애여성이 취할 수 있는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 방점을 둬 이들을 가둔다.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접근성이 고려되지 않고, 이가 또다시 자원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장애여성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통제하면서 그들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3) 

장애여성에 대한 통제에는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일상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비장애인의 경우에도 일생에서 취약해지는 순간이 있고, '건강한' 몸일지라도 매순간 여러 사람들과 기구들의 조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는 멸시적 의미의 '의존적 대상'을 선별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 수행해야 하는 사람, 이가 필요 없는 독립된 사람의 상을 만들어낸다. 비장애인 남성의 의존은 있으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비장애남성이 여성으로부터 돌봄을 충분히 받고 있음을 알리는 건 오히려 남성의 '능력'을 입증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장애여성의 의존은 부각된다. 누구를 무력한 존재로 상정할 것인가에 대한 잣대는 주체가 되기 위한 기준을 구성원들에게 강제하고,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돌봄과 취약을 성찰하지 못하게 만든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 행사 <춤추는 허리 X 수수>의 콜라보 무대, 2018
장애여성공감 20주년 기념 행사 <춤추는 허리 X 수수>의 콜라보 무대, 2018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의 생애경험에서 그녀들이 도전하고, 노동하고, 서로를 돌보며 자신과 외부와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갈지를 고민해온 맥락을 알 수 있다. 조화영의 노동은 자신과 타인을 살리는 노동, 서로 연결된 공존의 노동으로 기존 노동에 대한 정의를 자본생산노동에서 일상을 영위시키는 노동으로 의미를 전환시킨다. 조미경은 자신의 장애를 통해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하는 인간의 몸을 느꼈고, 이 경험을 '정상적' 몸에 대한 신화에 대항할 언어로 만들어간다. 변화하는 몸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상성'에 대한 기준에서 벗어나 주변과 자신을 개척하는 과정이 된다.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숨 활동가는 관계에서 '그 순간에 들었던 감정을 다시 돌아보고, 불편함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고 전달할 말을 연습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이 관계에서 지키고 싶은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였다. 4) 

돌봄은, 특히 장애여성의 돌봄은 미안해야 하는 것, 감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 장애여성은 관계에 주도권을 갖기가 어렵게 된다. 또 이러한 불평등은 장애와 의존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인식을 다시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된다. 그렇기에 긴장감을 가지고 순간의 감정, 생각을 정리한다. 자신의 어려움을 전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일은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이뤄진 발화가 상대에게 닿아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어떠한 부대낌과 충돌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은 구조에 저항하는 실천으로써 다른 관계 맺기를 위한 고된 작업을 이어간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장애여성공감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의 제목이다.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에서 어긋나던 지점들을 짚어내고, 장애여성의 삶의 고민들을 의미화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왜곡된 규범들을 분석하면서 같은 원리 아래 다른 방식으로 차별받아오던 다른 불화하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차별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이, 옆에 있는 타인이 주체가 될 수 있게끔 할 것인가. 나와는 다른 존재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살아가고 싶은가를 책은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상한 몸을 만난 당신에게 이 책이 불구의 정치를 함께 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그러나 시대마다 존엄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애인을 비롯해 시대마다 불화하는 존재들은 '불구'라는 낙인으로 차별받았다. 장애여성은 몸의 차이로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장애여성의 경험과 위치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존재를 일깨우며 정상성을 강요받는 다른 몸들과 만난다. 그리고 불구의 존재들과 함께 폭력적인 운명을 거부한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도입문


각주 
 1) 정창조. 장애인은 왜 노동으로부터 배제되는가: 자본주의 생산성 개념 비판, 장애인노동권 연속좌담회 장애인노동과 노동의 전환, <1강 장애인노동, 노동의 개념을 바꾸다 >, 2021.7.13


2)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숨 활동가, [돌봄민주주의x페미니즘] "청년 돌봄, 더 잘 돌볼 권리를 찾아서" 연속기획포럼, 2021.7.8
 

3) 2019년 [친밀성과 통제: 장애여성 피해경험 재해석] 자료집


4)  Ibid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2020년 IL과 젠더포럼, [일 할수록 살기 힘든 사람들(부제: 시설사회에 도전하는 동료관계를 상상하며)],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공감독립센터 [숨] 자료집
나영정 외 20명, 장애여성공감(엮음), <시설사회: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와온, 2020.9.16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 #페미워커의 마주보기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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