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뿌리 다칠라학생 김시현과 황태원의 화분만드는 모습
박향숙
여름방학이 가장 좋은 이유로 '늦잠을 잘 수 있어서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아침 일찍 모였다. 지난 주말에 이미 활동 계획과 준비물(플라스틱 컵, 아이스팩, 조약돌, 좋아하는 식물)을 공지했다. 나도 역시 여분의 준비물을 챙겨서 학원으로 갔다.
화분 만들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내가 준비하면 몸만 와서 시키는 것만 할 수밖에 없으니, 준비물을 직접 가져오고, 인터넷으로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한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오는 센스를 믿는다고 했었다.
화분을 만들기 전에 박수진 상담가는 플라스틱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해악에 대하여 설명했다.
"여기 PPT를 보세요.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서 우리 학생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 바로 텀블러 사용이에요. 그런데 습관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지요. 환경운동을 하며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저도 텀블러를 종종 놓고 다녀요.
오늘의 활동에선 여러분이 마시는 시원한 음료수를 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식품냉동에 쓰는 일회용 아이스팩을 활용해서 식물 화분을 만들 거예요. 소위 플라스틱 재사용, 재활용이라고 하지요."
잠시 후, 학생들이 가져온 준비물을 펼쳐놓고 박 상담가의 화분 만들기 시범이 있었다. 김래혁 학생(월명중3)이 가져온 스팟 필름을 두 개로 나누어서 흙을 깨끗이 털고, 물에 뿌리를 씻었다. 플라스틱 컵에 조약돌을 넣고, 그 위에 아이스팩 내용물을 붓고 물을 부었다. 씻은 식물의 뿌리를 다치지 않게 컵의 뚜껑 안으로 넣어 지지대를 만든 후, 컵에 앉히니 정말 투명하고 맑은 화분으로 변모했다.
젤 성분의 아이스팩 역시 주재료가 폴리에틸렌이다. 미세플라스틱 중 하나로 불수용성이어서 분해가 되려면 무려 500년 이상이 걸리는 소재이다. 그런데 이 아이스팩을 재활용하는 방법으로 '화분의 토양보수제로 활용하기'가 있었다. 식물 화분에 물과 함께 얹으면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고 화분이 촉촉하게 생생하게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했다.
얼마 전 무료급식센터에서도 도시락과 함께 아이스팩을 동봉하면 음식의 신선함이 유지된다는 것을 지인에게서 들었다. 이후 학원 밴드에 아이스팩을 모아서 동사무소나, 필요한 곳에 갖다 주자고 홍보하고 있었는데, 화분에 사용되는 또 하나의 비법을 배운 것이다.
박 상담가가 한번 설명한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어떻게 화분을 만드는지를 이해했다. 단지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살펴보니, 웃음도 나고, 걱정도 됐다. 학생들이 흙을 만지거나 식물의 뿌리나 줄기를 직접 만질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화분에 들어있는 식물을 뿌리가 다치지 않게 둘로 나누어 흙을 털고 물로 씻는 건 나름대로 어려운 일이었다.
엉덩이를 붙였다 뗐다, 물에 손을 담글까 말까, 식물의 뿌리를 만질까 말까, 아이스팩의 젤으로 손으로 넣어야 될까 말까 등등. 아이들은 영어 단어 암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수다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