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의원. 바탕은 정의당 전용 색상이다.
오마이뉴스
1959년생.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78학번으로, 미니스커트와 하이힐, 여행과 연애라는 대학의 낭만을 누리며 역사 교사를 꿈꾸던 여대생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전태일 평전>은 평범한 여대생 심상정을 구로공단 미싱사 '김혜란'으로 바꾸어 놓았다('부캐'의 원조가 여기에).
소외된 자들을 위한다는 운동권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거기도 남자들의 터였다. 여성이 조직의 지도부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 이에 반발한 심상정은 여성들을 모아 서클을 만들기도 했고 1980년에는 서울대학교에 총여학생회를 창설하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이 되었다.
구로공단에 미싱사 '김혜란'으로 위장 취업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었고 1986년에는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의원, 1990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조직국장을 역임하며 운동계에 이름을 알렸다. 구로동맹파업으로 수배된 시절 도망을 얼마나 잘 다녔던지 심상정 체포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당시 금액 500만 원과 경찰 1계급 특진이라는 포상이 걸려 있을 정도였다(무려 9시 뉴스에 자신의 얼굴이 딱!).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사무차장을 맡아 2003년 한국에서 최초로 노동조건 개선 및 임금 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합의를 이끌어 내며 소위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풍부한 노동운동 경험을 토대로 이듬해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후 진보정당의 첫 4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