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2021)
꿈꾸는인생
2019년 10월부터 '방송가 불온서적'이라는 꽤나 불온한 제목으로
브런치에 풀어낸 그의 이야기는 어느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었고, 올해 7월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다.
그가 끝내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을까. 지난 10월 23일 이은혜 작가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듣고 보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에겐 첫 방송일 만큼이나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 첫 급여가 입금된 날이다. 그날 통장에 찍한 숫자는 1,250,000였다.
숫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작자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작가인 나는 작가의 위치에서 서로 각자의 일을 맡아 했다고 생각했는데 통장에 찍힌 숫자는 다른 얘길 했다. 금액만 놓고 보자면 나는 잉여인력이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월 10일 즈음이면 칙칙한 얼굴로 방송국 2층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52쪽)
그는 작가로 일하는 동안에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받는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창피해서였다. 방송을 만드는 일이 행복했고 글을 쓰는 일이 좋았지만 "노동이 평가 절하되는 일에는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일의 기쁨으로 가슴이 부풀다가도 급여의 슬픔으로 마음이 쪼그라드는 일'을 되풀이해서 겪어야 했다. 그것은 '불안'이자 '차별'이었다.
한 달만에 깨달은 그 불안과 차별은 그래도 견딜만은 했다. 한 달에 하루 이틀만 잘 넘기면 되는 일이었고, 또 앞으로 달라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을 테니까.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언제라도 하루아침에 이 일을 더 못하게 될 수 있다는, 더 근본적인 불안과 차별이었다.
방송은 하나의 유기체 같아서, 좋은 원고나 DJ의 애드리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입 작가는 섭외에 열심이고, 경력 작가는 능란하게 원고를 써내고, PD는 찰떡같은 선곡을 하고, DJ는 공감력이 뛰어날 때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빛을 보지 못하면 언제나 특정인만 사라진다. (84쪽)
2019년 3월, 그는 함께 일하던 PD로부터 계약했던 1년을 채우면 나가 달라는 말을 들었다. 1년을 겨우 1주일 앞둔 때였다. 그는 "딱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물음이 수도 없이 머리를 괴롭혔다"고도 했다. 하지만 짐을 챙겨 나오는 것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10년을 일하다가도 계약 기간조차 못 채우고 쫓겨나야 하는 방송 바닥에서 1년을 채우고 나온 건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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