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최성용, 2020)
동아시아
도시의 모습이 바뀌기까지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다. 1984년 9월 19일엔 지체 장애가 있던 김순석씨가 휠체어를 타고도 길을 건널 수 있게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횡단보도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10cm의 '턱'이 그에겐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절박한 장벽이었다. 횡단보도 끝 보도턱을 없애야 한다고 법으로 정한 건 그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나서였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시내 한복판엔 횡단보도조차 없는 길들도 많았다. 차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길을 걷다 찻길을 만나면 차가 다니는 길 위(육교)로, 또는 아래(지하보도)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1998년 9월, 이번엔 '녹색교통운동'이라는 시민단체가 광화문과 신촌로터리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 횡단보도를 놓으라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면 1분도 안 걸릴 거리를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이들은 너도나도 힘을 보탰고, 3개월 뒤 서울시는 10곳 가운데 6곳에 횡단보도를 놓겠다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광화문 네거리에 처음 횡단보도가 놓인 것도 이 무렵이었다.
서울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 횡단보도가 생긴 것은 길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닌 '사람'임을 천명한 '사건'이었다. (38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마땅히 그곳에 있었을 것만 같은 횡단보도와 낮은 턱 하나를 만드는 데도 아주 긴 시간, 누군가가 애를 써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겨선 안 되는 것들을 막아낸 이야기도 있다. 2006년 인천시는 유서 깊은 배다리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8차선 도로를 내기로 했다. 송도와 청라 두 개의 신도시를 차로 더 빨리 오갈 수 있다면 오래된 마을 하나가 두 동강 나는 것쯤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시민들은, 배다리의 역사성, 시민 공동의 기억, 시민들의 삶 정도는 깡그리 무시하고, 새로 생긴 두 신도시를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산업도로를 만들기 위해 배다리마을을 둘로 나눌 수 있다는 인천시의 무심함과 무자비함에 반기를 들었다. (52쪽)
그랬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던 건 '우리가 사는 도시(동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고 단 한 번 묻지도 않고서 멋대로 마을을 두 동강 내려는 그 '무심함과 무자비함'이었다.
집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어느새 눈에 띌 만큼 큼지막한 벌판이 생겨날 무렵, 주민대책위와 인천시민모임 등이 꾸려졌다. 그리고 5년간 찻길을 내려는 쪽과 막아나선 쪽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그사이 집을 허물면서 생긴, 언제 사라질지 모를 벌판엔 바람에 실려 온 꽃씨들이 가만히 꽃을 피웠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온갖 새들도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생긴 이 공터를 '배다리생태공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땅과 풀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힘겨루기는 그 뒤로도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주민들 몇몇이 농성천막 안에서 무척이나 춥고 길었던 겨울을 버텨야 했던 일도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됐을까. 귀띔하자면, 주민의 힘으로 찻길을 내는 걸 막아낸 사건을 찾아 이제 더는 1960년대 미국 그리니치빌리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더 많은 취향과 더 많은 선택지
여기까지가 이 책의 4분의 1이다. 나머지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이 책은 노점상 상생(인천 부평 문화의 거리), 근대 건축물 보존(인천 동화마을, 목포 유달동), 재건축(서울 인사동 쌈지길), 도시재생(경남 통영 동피랑, 경기도 안양 삼덕공원, 인천 괭이부리마을, 부산 감천마을), 미군기지 이전(부산 시민공원, 인천 부평공원), 산업유산 활용(서울 선유도공원과 문화비축기지, 경의선숲길, 광주 푸른길공원) 등 도시의 풍경을 크게 바꿔놓은 전국 곳곳의 굵직한 사건들을 두루 살피면서,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리고 '그런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