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 탄핵인용! 박근혜 구속! 황교안 퇴진! 19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렸다.
권우성
나는 민주주의에는 2개의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정치가 필요하다. 1987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역동적인 민주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공존의 정치의 영역을 확대해갈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쟁투의 과정이기 때문에 투쟁의 정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는 투쟁의 정치 대 공존의 정치가 '7대 3' (과도한 단순화를 무릅쓰고) 정도로 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이런 과제가 주어졌으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공존의 정치를 실현해내는 것 자체도 정치적 역량이다). 적폐청산의 강렬한 국민적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공존의 정치를 시도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었다. 한편으로 보수가 과거의 프레임을 충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때로는 촛불시민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도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공존의 정치는 바로 적대적 상대방까지를 인정하는 다원성 존중 위에서 가능할 하다. 바로 이 점에서 병목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정치는 쟁투이고 선거를 통해 승자를 가리는 과정이다. 그런데 그 정치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이후 한때 정치지도자들은 여의도에 얼마나 많은 군중이 모이는가를 기준으로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당연히 수백억 원의 돈이 들고 부패가 개입됐다. 지금은 물론 우리 정치가 그런식의 후진국형 동원정치는 넘어섰다. 이후에는 TV토론이 중요해졌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적극적인 정치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 쌍방의 투쟁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세상은 넓고 투쟁할 일은 많기 때문에, 굳이 모든 것을 다 전면적 투쟁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점에서도 공존의 정치가 필요하다.
당연히 이러한 현실 재인식이 투쟁의 정치를 통한 민주주의 전진이 멈추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엄청난 정치불신이 존재하는 것은 여전히 민주주의에서 목마르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국민들이 여전히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전진을 위한 현실조건의 복잡성이 증대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민주주의의 절대적 후진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 다양한 가치의 균형점을 찾아가는식으로 복잡해졌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선택으로 좋은 사회와 좋은 정치를 만들 수 없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회문제의 솔루션도 다양화됐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의 패착이라고 하는 부동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보수는 공급확대정책, 진보는 투기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양자의 단순 대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시장과 경제는 복잡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그러한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전진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진전했지만, 여전히 더 높은 민주주의, 더 깊은 민주주의, 더 넓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야 한다. 국민들은 여전히 목마르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이 아니라 압축성숙으로
이런 점에서 우리가 모두 학교와 사회의 문제를 풀어갈 때 높은 기대를 견지하면서도 절대후진국처럼 단일방정식이 아니라 복합방정식으로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있다. 그럴 때 비로소 해법 찾기도 가능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이 가능해지며, 복합방정식이 안고 있는 여러 가치와 요인들 또한 개방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압축성장의 성공사례 국가다. 압축성장을 넘어 '압축성숙'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