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전이 처음 시작된 부여군 석성면 소재 정각사의 최근 모습
우희철
간첩 2명은 김동식과 박광남이었다. 이들은 위조한 주민등록증 4매를 소지하고 지역과 여건에 따라 바꿔 사용하면서, 서울·대구·광주·경기·강원·충남 일원을 활보하며 간첩 활동을 했고 남대문 시장 등지에서 지령 수신용 라디오·의류·시계 등의 공작을 위한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들은 고정간첩 봉화1호를 만나 귀환하라는 지령에 권총을 소지하고 정각사에 온 것이다.
병력은 모두 태조봉을 둘러싸고 2인 1조로 나눠 수색과 잠복을 시작했다. 간첩을 처음 발견한 지 2시간여 후 정각리 소재 4번 국도에서 2명을 발견했다. 간첩들을 찾은 이들은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송균헌 순경이었다. 정각제 연못의 경사진 배수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동식이 권총을 쏘자 순경들도 총으로 맞섰다. 하지만, 나 순경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송 순경은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나 순경은 2주 후 순직했다.
간첩들은 다시 석성산(해발 180m)으로 도주했다. 이를 발견한 장진희‧황수영 순경이 뒤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총성이 울렸다. 김동식이 쏜 총에 복부를 맞은 장 순경이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동료 경찰들까지 가세해 몸싸움 끝에 김동식을 생포했다.
나머지 도주한 박광남을 찾기 위해 예비군 2만여 명까지 동원됐고, 결국 3일 후인 10월 27일 오전 11시경 부여군 가평마을 인근에서 박광남을 발견하자마자 사격해 검거했다. 박광남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인 나성주(당시 30세), 장진희 순경(당시 31세)이 사망했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1997년 12월 10일 부여 대간첩작전 전적지 현장에 경찰 충혼탑을 건립했다. 부여군과 부여경찰서, 97연대, 203여단 등은 매년 경찰충혼탑에서 두 경찰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