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 등 2차대전 때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한 장면이다. 동방정책의 주창자인 브란트는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독일과 주변국 간 화해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합뉴스=DPA
빌리 브란트 사과의 진정성은 단순히 무릎을 꿇었던 것을 넘어섰다. 동서냉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펼쳤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그 진정성이 증명됐다. 그리고 이 정책은 지금의 독일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어떻게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세계 평화를 논하며 국제사회의 규범(International Norm)을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역사를 단순히 잊어야 하는 과거사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와 이에 기반한 정책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청산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빌리 브란트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대선을 약 두 달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역사적 책임감을 머리로 알고, 이를 국민들에게 가슴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미래로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은 무작정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를 바로 잡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바로잡아야 하는 잘못된 역사 가운데 대표적인 게 바로 '간첩조작'이다. 1970, 1980년대 독재정부는 수없이 많은 자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선출되지 않은, 즉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부는 국가기관의 공권력을 국민의 재산과 목숨을 보호하는 데 사용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 오히려 무고한 국민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1970, 1980년대 국민을 향해 저지른 국가기관의 고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 고문피해자인 국민에게 사과도 없었다.
2021년 10월 기준,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간첩조작 피해자는 총 449명이다. 아직 재심을 진행 중이거나 재심 신청조차 하지 못한 사례를 제외한 수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449명'이라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2005년 함주명씨 재심 무죄를 시작으로 2021년 449명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449명을 고문했던 국가기관을 살펴보면 국정원이 214명으로 47.6%, 경찰청이 120명으로 26.7%, 국방부가 75명으로 16.7%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