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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님, 살아있는 피해자 얼마 없습니다

동해안 납북피해어부들, 진상 규명과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 촉구

등록 2022.01.07 11:43수정 2022.01.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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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8일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진실규명시민모임' 대표 김춘삼님과 인터뷰 한 내용을 호소문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동해안납북귀환어부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 김춘삼씨

동해안납북귀환어부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 김춘삼씨 ⓒ 변상철

 
[기사수정: 7일 오후 3시]

저는 속초에 사는 김춘삼이라고 합니다. 저는 10대 때 오징어잡이 뱃일을 나갔다가 북한에 납치된 후 돌아온 소위 '납북귀환어부'입니다.

1953년 종전 이후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도가 되었습니다. 분단은 육지뿐만 아니라 바닷길도 갈라놓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선이 바다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분단으로 갈라진 바다였지만, 동해서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가난한 어부들은 먹고살기 위해 도리 없이 바다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다에는 여기까지가 남쪽이다, 여기가 군사분계선이다 표시하는 철조망도, 부표도 없습니다. 60년대, 70년대 바다에 나가는 선박은 나무로 만든 목선이었고 선장이나 기관장은 해도 한 장도 없이 오로지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생계를 위한 조업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레이더나 위성항법장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선장의 경험과 나이 든 선원의 감에 의지해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수시로 남북관계가 긴장되었고 그럴 때마다 북한은 공공연히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우리 같은 어부들을 납치했지만 납치보다 무서운 것은 굶어 죽는 것이기에 납치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을 지켜야 할 정부는 북한에 의한 납치, 납북을 막지 못하고,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무수한 선박이 납치되고 선박이 나포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군과 해경은 우리나라 선박이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우리 국민이 잡혀가는 것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에 따르면, 이러한 납북어선 피해자가 전체 1천여 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 납북피해 선원들은 북한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귀환을 선택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선택해 귀환한 어부를 따뜻하게 맞아주기는커녕 오히려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지령을 받고 왔다는 허위 사실을 뒤집어 씌워 국가보안법 전과자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우리들에게 돌아온 것은 몽둥이 세례와 모진 고문 그리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빨갱이 전과자라는 낙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고성과 속초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 피해가 심각합니다.

스스로 억울함을 풀기 위해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이후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납북귀환어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는 결정과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월선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결정을 법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책임을 피해자인 선원과 시민에게 아직까지 떠넘기려 하는 것입니까? 더 이상 이렇게 지내는 것은 분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해서 우리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 10일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을 창립했습니다. 이제 국가가 스스로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피해자가 고령으로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유족뿐이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살아있는 직접 피해자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아왔는데 처벌

누구는 정전협정 이후 70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이제 와서 납북귀환어부들이 단체를 만드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속초, 고성 지역 등 동해안에만 납북귀환어부 피해자가 1천여  명이 넘습니다. 이 귀환어부들의 전과로 인해 빨갱이 연좌제에 얽혀 고통받은 이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은 광범위하게 발생했지만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어부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상당수의 피해자가 억울함을 가진 채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단체를 창립한다는 언론보도만으로도 많은 수의 피해자가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정부는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어부들을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으로 마구잡이로 처벌했습니다. 당시 강원일보 기사 등을 보면 북한에서 출발해 아직 속초에 도착하기도 전에 반공법,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한 기사들도 있습니다. 사실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이미 범죄자로 규정해 처벌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입니까? 조사해보지도 않고 범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다면 원시국가에나 있을 법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고의로 북한으로 월북한 사실이 없습니다.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해도도, 레이더도 없이 생계를 위해 바다에 목숨을 걸었던 우리가 월선을 했다는 것은 오로지 경찰의 고문으로 인해 조작된 사실일 뿐입니다. 국가기록원이나 검찰청에 저희 기록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내놓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반공법 기록은 영구보존되어야 할 기록인데 어찌 기록이 없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기록을 폐기했다면 폐기했다는 문서나 장부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법을 지켜서 손해를 보고, 법을 지키지 않아 이익을 보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하지 말아 주십시오. 불법, 불의, 불공정에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이제 동해안의 억울한 납북귀환어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 목소리에 응답해 주십시오. 이에 우리는 후보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간곡히 제안합니다.

1. 차기 대통령 후보는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이뤄주십시오.
2. 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이 얼마인지 전수 조사해 주시고, 납북귀환어부 처벌이 위헌적, 위법적 처벌임을 확인해 주십시오
3.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처벌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밝혀주십시오.
4. 당선이 되신다면 즉각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5. 강원도와 고성, 속초 등 지역단체들을 통해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의료적 지원과 기념사업을 하기 위한 법 제정을 적극 지원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2022년 1월 7일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 김춘삼
#평화박물관 #수상한흥신소 #납북귀환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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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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