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손 섬의 보급난에 대해 증언하는 이구치 미츠오 씨(2012년 인터뷰 당시 88세) "부상 당하면 금세 구더기가 꼬입니다. 그리고 파리가 붕붕 날아다니죠. 그럼 그 구더기를 집어서 딱 딱 씹어먹는 것이죠."
NHK 전쟁증언 아카이브
한편, 제국 일본의 전쟁지도부는 루손 섬 수비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루손 섬 결전을 국민들에게 대대전으로 선전했다. 지난날 싱가포르를 함락시키며 국가적 영웅으로 올라선 야마시타 대장이 일본 본토의 코앞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전의를 북돋을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급기야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총리는 루손 섬 수비대가 방어에만 급급하다며 육군참모총장을 채근하기에 이르렀다. 즉, 루손 섬 수비대가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어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본토의 명령에 따라, 일선 부대에서는 '키리코미(斬り込み)'라는 이름의 무모한 공격을 시도해야 했다. 이들은 군도, 총검, 수류탄 등의 빈약한 무기를 들고 연합군 진영에 돌격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부상병들 역시,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광산에 마련된 야전병원의 어둠 속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병기는 마모됐고 탄약은 소진됐으며, 식량은 바닥이 났다. 굶주린 장병들은 '자활' 지침에 따라 스스로 먹을 것을 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울부짖는 필리핀 현지인들로부터 식량을 빼앗았다. 장병 개개인은 이 약탈행위로부터 죄책감과 동요를 느끼기도 했지만, 당장 오늘 현지인의 식량을 빼앗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아사하게 될 판국이었다.
일본군의 거듭된 약탈에 분노한 필리핀 현지인들은 급기야 항일 게릴라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연합군으로부터 무기와 훈련 등을 제공받은 이들은 일본군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일본군은 게릴라 소탕을 명목으로 현지 부락들을 초토화시켰고,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으로부터 현지인들의 항일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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