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남 지음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그림책공작소
산에 가기 전에는 실감을 못했다. 정말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다. 연둣빛으로 돋아나는 잎을 보며 봄을 느끼고, 길게 뻗어나는 가지와 무성하게 돋아나는 잎사귀들을 보며 여름을 실감했다.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을 보며 가을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맨몸뚱이를 훤히 드러내는 겨울 산까지 함께 하고나서야 겨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 다른 나무라는 걸.
겉모습만 다른 것도 아니었다. 향도 달랐다. 따스한 봄의 향, 습도 가득하거나 태양빛 가득한 여름의 향, 따스함과 시원함 사이 가을의 향, 시원하다 못해 차디찬 겨울의 향까지 산의 공기는 다 같은 향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빛도 달랐다. 부드러운 봄의 빛, 쨍한 여름의 빛, 따사로운 가을의 빛, 포근한 겨울의 빛까지. 산은 매일, 매 주, 매 월, 한 해가 다 달랐다.
나무가 많은 동네에 사는 김선남 작가도 그걸 알아차렸나 보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꽃이 피는 걸 보고 벚나무인 걸 알고, 싹이 나는 걸 보고 은행나무인 걸 알고, 그늘을 보고 느티나무라는 걸 알았다는 걸 보면. 뿐인가. 다람쥐를 보고 참나무를 발견하고, 솜사탕 향기가 나는 나무가 계수나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썼다
다정하게 들려주는 작가의 말을 듣다보면 나무의 다른 생김만큼 다 다른 우리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저 다양한 나무들이 서로의 몸에 기대어 가뭄도, 태풍도, 홍수도, 산불도 이겨내겠거니 생각하면 우리 삶도 혼자보다 함께 살아갈 때 더 잘 살 수 있겠다는 믿음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매 페이지마다 작가가 새로 알게 된, 그리하며 읽는 독자들도 새롭게 알아가는 다 다른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가득한 공원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장면을 마주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언급한 나무들의 생태에 대한 정보까지 실어 책의 완성도를 더했다. 이쯤에서 피어오르는 궁금증. 그렇다면 다 다른 나무의 같은 점은 없을까? 독자의 이런 호기심을 작가도 예상했는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혀뒀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잎을 내서, 씨앗을 키워 보내는 삶을 해마다 반복하며 살아가요. 그건 모든 나무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나무마다 다 달라요. 그 다름이 그 나무의 고유한 개성이고 그것이 드러날 때, 그 나무는 빛이 나요. 여러분은 언제 빛이 나나요?"
'나무를 알아가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더니, 작가가 던진 질문을 한번 곱씹어 봐야겠다. 수리산을 걸으면서.
아, 김선남 작가와 나는 아마도 한동네에 사는 것 같다. (작가는 당연히 나를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수리산 그리고 같은 동네에서 같은 나무들을 보고 쓴 책이라 그런지 그림도, 글도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
김선남 작가는 2019년 그림책 <은행나무>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미 자연을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나무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가 자연에서 길어 올린 글과 그림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김선남 (지은이),
그림책공작소, 2021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공유하기
애타는 마음으로 산불을 지켜보다 생각난 그림책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