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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베'와 계단 앞... 지금은 멀어진 그 친구를 떠올리며

마을 사람들의 평등말하기 '차별금지법 있는 마을', 그 여섯 번째 이야기

등록 2022.05.02 18:07수정 2022.05.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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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반에는 장애인 친구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꽤 오랫동안 내 짝꿍이었던 남자 친구로, 성인이 된 후 교육을 통해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이었다. 내 짝꿍은 무언가 늘 부족한 데다가,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 상황으로 인해서 당시 나는 종종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는 했다.

그래도 짝꿍 엄마는, 체육시간 운동장에 있던 나를 따로 찾아와 "우리 정훈이와 잘 지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간식을 사 주셨던 기억이 있다. 완전한 호의는 아니었어도, 아마 내가 다른 친구들과 달리 짝꿍을 잘 챙겨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으로 내 절친한 친구였다.

장애이해교육을 당시 내가 받았더라면 
 
 2001년 8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시켰던 버스점거투쟁.
2001년 8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시켰던 버스점거투쟁.다큐인
  
나는 그 때까지 한 번도 장애이해교육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당시 우리는 모두 내 짝꿍이 '3층 빌라에서 거꾸로 떨어졌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장난과 차별, 혐오를 넘나드는 학급 친구들의 여러 표현과 행위들을 선생님이 제재하는 걸 본 적도 없었다.
     
30여 년 전만 해도 학교에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높은 층에 위치한 교실을 이용해야 했기에, 친구의 엄마는 그를 업어서 등하교시켰다. 외출하지 못하는 친구를 찾아가 노는 내게 친구 엄마는 "주희는 속이 깊다"며 칭찬하셨다. 우리는 초등학교까지는 함께 다녔지만, 중학교부터는 따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이동에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나보다 체구가 컸고, 점점 나이 드는 친구 엄마가 언제까지나 엘리베이터를 대신해 친구의 등하교를 도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권 외곽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학교가 너무 멀었지만 가끔씩 찾아갔고, 나는 친구를 만난 김에 청소 같은 봉사활동도 했다.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모의고사를 본 이후 멀어졌는데, 이유는 친구가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넓은 나를 원망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 하고 꿈이 많았던 친구의 속도 모르고 나는 그의 앞에서 나의 입시 계획을 이야기했고, 친구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바쁜 입시 중에도 일부러 찾아간 나를 친구가 밀어냈다는 생각에 몹시 마음이 상했던 터다. 그러다 뒤늦게 대학 입학 후 친구의 사과 메일을 받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고, 당시의 어린 우정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다.

가끔씩 내 절친과 짝꿍을 생각한다. 친구가 지금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닐 수 있었다면 친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멋내는 걸 좋아하던 친구가 예쁘게 꾸미고, 나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을까? 지적장애를 이유로 온갖 놀림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내 짝꿍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짝꿍이 나이 들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과 여전한 것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는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4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는 모습.이희훈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학교와 직장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의무화되었으며, 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무릎이 아픈 어르신, 캐리어를 든 여행객 등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동에 편의를 필요로 하는 많은 시민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보장해달라 외쳐야 하며, 이들의 목소리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그에 따른 날선 반응이 있을 때에나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한 비문명적 태도'로 폄훼 당하고, 일부 정치인을 비롯해 온갖 조롱과 멸시에 가득 찬 혐오를 날 것 그대로 마주하고 있다(관련 기사: 이준석에게 '장애인차별혐오상' 수여... "21일 출근 탑승 재개" http://omn.kr/1ygf8).

발달장애인 부모 역시 자녀의 돌봄을 국가가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하며 삭발하고 곡기를 끊고 투쟁하고 있다.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장애인과 가족 550 여명이 4월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구축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장애인과 가족 550 여명이 4월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구축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희훈
 
장애인의날(4.20)을 전후한 2022년 봄 풍경은 이처럼 삭막하기만 하다. 계절은 아름답지만, 진짜 봄은 오지 않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당사자와 가족들은 목숨을 걸고 모멸을 견디며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며 온 몸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법조차 없이 차별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차별 없는 온전한 일상에 대한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국회는 '사회적 합의'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 법 제정의 유불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싣고, 필요와 당위에 따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에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내 짝궁은 언제쯤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차별금지법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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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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