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10일 오전 11시부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같은 시각에 나는 아내와 함께 텃밭에 있었다.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하더라도 굳이 중계방송을 보진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틀었더니 중계방송이 나와서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으니까.
유례 없는 박빙의 표차로 결과가 엇갈린 3월 대선을 두고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라거나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와 같은 명언을 불러오기에는 '거시기'하다.
'정치 고관여 계층' 간의 격돌, 제20대 대선
짐작했겠지만 내가 투표한 후보는 아슬아슬하게 낙선했고, 전임 대통령이 발탁해 검찰총장까지 오른 전직 검사가 정치 입문 14개월 만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적 무관심'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선거에서 맞붙은 것은 이른바 '정치 고관여 계층들'이니까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내게 '이민 가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던, 적지 않은 이웃들이 그들이다. 물론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나나, 날이 갈수록 보수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짙어가면서 때론 과격해지는 아내도 정치 고관여 계층이긴 마찬가지다.
상대 후보가 당선하면 이민도 불사하겠다는 엄포는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라고 놓지 않았으랴. '전부 아니면 전무'로 귀결되는 선거 문화가 고착되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정권 심판의 표심이 강했고, 후보의 문제도 적지 않았지만, 선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0.73%p의 표차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민주당 정부의 실정 탓임은 명백하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정부는 그것을 지키지 못한 채 결국 5년 전에 탄핵한 정치 세력에게 정권을 내어주고 말았다.
정치 고관여 계층에는 단순히 후보자 개인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나라가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전망이 있는 이들이다. 즉 이들은 '진보'나 '보수'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어떤 확고한 태도와 자세(stance)가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 하고 새 정부의 앞날을 부정하면서 이른바 '불복종'의 심리를 이어가겠지만, 그런 태도가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자신들의 지지로도 새롭게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깨어지면서 이들은 민주주의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새 정부에 협조하고 편 가르기로 일관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해도 그게 관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태도의 강약이 있을지언정 이들은 명확한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서 행동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가 국민의 반을 우울증으로 몰아넣었다"라거나, "국민 절반이 텔레비전(뉴스)을 보지 않는다"와 같은 농반진반의 이야기가 통용되는 근거다.
상대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어쨌든 두 달여의 당선자 시기를 거쳐 오늘 취임식이 치러짐으로써 새 대통령의 임기는 시작됐다. 상대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지자들은 절치부심,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취임식 관련 뉴스를 보지도 듣지도 않음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쓰린 심사를 달래는 것이다.
취임식 관련 사진을 본의 아니게 봐야 했던 것은 오후에 인터넷에 접속해 이런저런 뉴스를 살펴보면서였다. 관련한 뉴스를 굳이 피한 것은 그걸 보면서 마음이 흐트러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선거일에 내가 지지한 후보의 패배를 냉정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