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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사건'에 연루시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21]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을 발표하여 국민을 공포에 떨게했다

등록 2022.07.01 15:20수정 2022.07.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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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집권 13년 차에 이른 박정희에게 1974년은 정치적 위기의 해였다.

계엄령, 위수령에 이어 긴급조치까지 연달아 발동하여 무시무시한 형벌과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으나 날이갈수록 약효가 떨어졌다. 해서 다시 꺼낸 것이 '용공카드'로 국민을 겁박하는 길이었다. 4월 25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는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을 발표하여 국민을 공포에 떨게했다. 이날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가 선포된 지 3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신직수 부장의 발표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민청학련은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혁당 재건위조직과 재일조총련계 및 일본공산당, 국내좌파 혁신계 인사가 복합적으로 작용, 74년 4월 3일을 기해 현정부를 전복하려 한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이들은 북괴의 통일전선형성 공작과 동일한 4단계 혁명을 통해 노동자ㆍ농민에 의한 정권수립을 목표로 했으며, 과도적 정치기구로 민족지도부의 결성을 획책했다.

이들이 획책한 이른바 4단계 혁명은,
① 유신체제를 비민주 독재로 단정, 반정부세력을 규합하며 ② 4월 3일을 기해 전국 주요대학이 일제히 봉기하여 중앙청ㆍ청와대 등을 점거 파괴하고 ③ 민주연합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1974년 4월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전국민주청년학생 총연맹의 중간수사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1974년 4월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이 전국민주청년학생 총연맹의 중간수사내용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청학련의 배후 주동인물로는,
① 전 인혁당수 도예종과 여정남 등의 불순세력 ② 재일조총련 비밀조직의 곽동의와 곽의 조종을 받은 일본공산당원 다치카와 하야카와 등 일본인 2명 ③ 기독교학생총연맹 간부진 ④ 이철ㆍ유인태 등 주모급 학생운동이다. 

73년 말 절정에 달했던 학원가의 반독재 시위는 긴급조치 1호의 선포로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이듬해 신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대학가는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떠돌기 시작한 '3, 4월 위기설'이 나도는 가운데 4월 3일 서울대ㆍ성균관대ㆍ이화여대 등에서 일제히 데모가 일어났다. 서울대 의대생 5백여 명은 흰 가운을 입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데모의 특징은 거의 같은 시간에 각 대학이 동시에 시위를 벌였다는 것과 선언문의 주체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이 시위에서 배포한 '민중ㆍ민족ㆍ민주선언'의 유인물이 민청학련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 이 유인물은 ① 부패ㆍ특권ㆍ족벌의 치부를 위한 경제정책을 시정하고 부정부패ㆍ특권의 원흉을 처단할 것 ② 서민들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고 근로대중의 최저생활을 보장할 것 ③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동운동의 자유를 보장할 것 ④ 유신체제를 철폐하고 구속된 애국인사를 석방할 것 ⑤ 모든 정보ㆍ폭압정치의 원천인 중앙정보부를 해체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빌미로 4월 3일 저녁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정부는 민청학련사건을 기화로 학생들의 반유신투쟁에 족쇄를 채우고자 이 사건의 관련자들을 급조한 비상군법회의에 송치했다. 군법회의에 송치된 사람은 배후조종 혐의로 전 대통령 윤보선,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김동길ㆍ김찬국 교수, 김지하 시인을 비롯,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21명, 일본인 2명을 포함한 무려 253명에 이르렀다.
 
민청학련 사건 재판 광경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으로, 심판관(재판관)은 현역 장성이며, 당시 재판장은 이세호 육군대장(가운데).
민청학련 사건 재판 광경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장면으로, 심판관(재판관)은 현역 장성이며, 당시 재판장은 이세호 육군대장(가운데).자료사진
 
김지하는 중앙정보부와 검ㆍ경이 혈안이 되어 뒤쫓았으나 그동안 이골이 난 피신으로 3개월 동안 강원도 내설악을 거쳐 강릉의 지우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암울한 심경으로 시 <1974년 1월>과 <바다에서>를 지었다. 피신자의 고통과 신혼의 아내를 그리는 <1974년 1월>이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
 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
 그 시간
 다시 쳐온 눈보라를 죽음이라 부르자
 모두들 끌려가고 서투른 너 홀로 뒤에 남긴 채
 먼 바다로 나만이 몸을 숨긴 날
 낯선 술집 벽 흐린 거울 조각 속에서
 어두운 시대의 예리한 비수를
 등에 꽂은 초라한 한 사내의
 겁먹은 얼굴
 그 지친 주름살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토록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던 날
 찬바람 속에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날
 두려움을 넘어
 너의 얼굴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바라보던 날 그날
 그날 너와의 헤어짐을 죽음이라 부르자
 바람 찬 저 거리에도
 언젠가는 돌아올 봄날의 하늬 꽃샘을 뚫고
 나올 꽃들의 잎새들의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 함성을
 못 믿는 이 마음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니면 믿어 의심치 않기에
 두려워하는 두려워하는
 저 모든 눈빛들을 죽음이라 부르자
 아아 1974년 1월의 죽음을 두고
 우리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자
 온몸을 흔들어
 온몸을 흔들어
 거절하자
 네 손과
 내 손에 남은 마지막
 따뜻한 땀방울의 기억이
 식을 때까지 (주석 1)



그는 4월 23일 대학시절의 친구 하길종 감독의 권유로 영화 <청녀(靑女)>의 조감독으로 촬영팀이 묵고 있던 신안군 대흑산도 예리관광 여관에서 체포되어 중앙정보부 6국에서 고문과 신문을 받고 5월 27일 기소되었다. 함께 기소된 사람이 54명이었다. 신직수가 발표한 <중요 피고인별 범죄사실> 중 김지하 관련 부문이다. 

김영일은 1973년 11월 초부터 조영래에게 용공불순 학생들을 포섭하여 전국적 규모의 강력한 학생조직을 형성하고 반정부적 언론인, 지식인, 종교인에게 인권운동을 가장하여 이에 동조하도록 하여 지원세력의 저변확대를 기하고 거사자금은 김영일이 조달하도록 모의하는 한편, 

동년 12월부터 1974년 2월 간에 민청학련 지도위원인 이철, 나병식, 서중석, 황인성 등과 기독학생총연맹 간사인 안재웅에게 폭력혁명을 일으킬 수 있도록 전국적인 학생조직을 결성하되 이미 조직이 잘 되어있는 기독학생총연맹과 반정부지도자들을 모체로 하여 서울과 지방의 결속을 강화하고 그 조직을 1선과 2선으로 복선조직을 하도록 선동함으로써,

정부 전복의 중심체가 될 민청학련을 조직케 하고 등 단체의 조직과 그 거사를 위한 자금을 조달키 위하여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 지학순과 모의한 후 그로부터 제공받은 금 108만원을 민청학련의 거사자금으로 제공하는 등 활동을 한 자임.

7월 21일 열린 비상군법회의 첫 공판에서 김지하는 이철ㆍ유인태ㆍ여정남ㆍ김병곤ㆍ나병식ㆍ이현배 등과 함께 사형, 유근일 등 7명에게 무기징역 등 가혹한 형벌을 선고하였다. 이에 앞서 7월 8일 열린 인혁당계에 대한 결심공판에서는 서도원ㆍ도예종ㆍ하재완ㆍ송상진ㆍ이수병ㆍ우홍선ㆍ김용원 등 7명에게 사형을, 김한덕 등 8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6명에게 징역 20년이 각각 구형되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에 전국의 가톨릭 사제와 신도들이 원주 원동성당에 모여 정부규탄과 지 주교 석방을 촉구하는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주여, 이땅에 정의를!", "부정부패 뿌리뽑아 사회정의 이룩하자"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지학순정의평화기금
 
민청학련사건 관련자에 대한 군법회의 재판은 74년 6월 15일부터 10월 11일까지 119일간 계속되었다. 74년 한여름 내내 긴급조치 피의자들을 다루는 군법회의 공판정은 연일 사형, 무기징역, 20년, 15년 등 유례없는 중형을 선고하여 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히틀러의 나치시대를 방불케하는 한국판 공포시대였다.

이로 인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학계 및 종교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번져가고 각계 각층의 반독재 민주화투쟁이 격화되는 한편, 외교문제로까지 번져 미국의회에서 대한 군사 경제원조의 대폭삭감이 논의되는 등 국제여론이 악화되었다. 


주석
1> <회고록(2)>, 304~30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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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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