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전쟁 개전을 기점으로 상승하는 신문발행 부수전쟁은 언론사들에게 있어 기회였다. 그래프에서는 만주사변, 일중전쟁, 일미개전을 계기로 신문 발행부수가 비약적으로 급증하던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은 적극적으로 전쟁에 편승하고 대중을 선동했다(출처: NHK스페셜 '일본인은 왜 전쟁으로 향했나')
NHK스페셜
뜻밖의 호황을 맞이한 언론사들은 신문 판매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만주에서의 승전보를 취재해 보도했다. 세계경제대공황의 휴유증을 앓으며 따분한 일상을 살아가던 대중들은 언론에서 뿌려대는 애국주의적 구호에 열광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만주사변은 결코 원한 적이 없었던 불의의 사태였다. 내각은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고 군사충돌을 빠르게 수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만주사변을 일으킨 관동군의 독단적인 진격은 계속되었다. 고공행진하는 판매량에 취해있던 언론사들 역시 이 시점에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본국 정부를 무시하고 사실상 불법으로 군사행동을 계속하는 관동군을 지지할 것인가, 비판할 것인가.
다수의 언론사들은 모처럼 찾아온 '대박'의 기회를 걷어찰 생각이 없었다. 대중이 원하는 언론사 논조는 분명해 보였다.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었던 이들은 만주와 몽골을 병탄하려는 관동군의 독단을 구국의 위업으로 예찬했다. '만몽(만주와 몽골)은 일본의 생명선'이라는 자극적 표제의 호외가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1920년대에 도래했던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물결 속에서 군부 견제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그들이, 이제는 오히려 군부 과격파들을 칭송하는 아이러니가 도래했다.
심지어는 중국 측의 도발이 아닌 관동군의 자작극으로 만주사변이 발발하게 됐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음에도 당시 언론사들은 끝내 사과나 정정보도를 내지 않았다.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그들은 진실 앞에 침묵했다. 일부 언론사들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미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대중들에게 비판적 보도는 매국행위로 받아들여졌다. 모처럼 용기를 냈던 이들은 사회적 압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숙여야 했다. 언론 스스로가 조성한 사회 분위기가 되려 언론을 침묵시키게 된, 웃지 못할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언론도 어찌하지 못하게 된 대중의 열광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파멸적 결말로 끌고 들어갔다. 국제연맹은 만주사변을 일본의 침략행위로 규정했고 세계 각국은 일본 정부를 성토했다. 외교관들은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 열강들과 타협하여 만주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합리적인 목소리는 일본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언론사는 국제연맹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고, 대중은 분노했다. 분노한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언론사는 다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끔찍한 악순환이었다. 사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외무성은 결국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해야만 했다. 국제연맹 탈퇴 소식에 언론과 여론은 쌍수를 드는 사이, 일본이 망국의 길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는 위기감은 손쉽게 가려져버렸다.
끔찍한 악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