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개전을 결정한 대본영 정부연락회의의 참가자들 도조 히데키 총리(가운데)를 주축으로 육해군 통수부와 각 정부부처 수장들이 모여 전쟁에 관한 방침을 정했다.
NHK
그럼에도, 그 누구도 '전쟁은 안된다'고 단언하지 않았다. 이미 중국과의 전선에서 수십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던 상황에서, 중국 전선에서의 철군은 '영령들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거기에,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정도의 예산을 타 먹어왔던 군부가 이제 와서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군부의 폭주에 학을 떼던 민간 정치인들과 관료들조차도, 언론에 선동된 대중들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쏟아질 것을 두려워했으므로, 결국 그 누구도 전쟁 반대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매한 태도를 견지해왔던 해군마저도 결국은 '해군 측에 배당되는 물자와 예산을 늘려줄 것'을 조건으로 대미개전에 찬성하였다. 그동안 미국을 가상적국으로 삼고서 성장해왔던 해군의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외무대신이 사임을 시사한 것이 최후의 유의미한 저항이었다. 그는 '육군이 멋대로 전쟁을 벌여 놓고는 어째서 외교에 모든 것을 떠넘기느냐'고 분노를 토로하며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조건을 가지고 협상을 시도할 수는 없다고 강변했다. 결국, '중국에서는 사태가 수습될 시 25년 이내 철군,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 시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에서의 즉각 철군, 동남아시아로의 무력진출 단념 확약'을 골자로 일본 입장이 측이 새로 정리되었지만, 외교적 해결의 희망은 이미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의 조건으로 미국과의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12월 8일을 기해 전쟁을 시작한다는 기가 막힌 결론은 그렇게 확정되었다. 개전을 확정지은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전쟁이 일본을 어떤 결말로 끌고 갈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보신에 급급했던 그들은 끝내 일본이라는 나라가 파멸의 폭주 열차 위로 올라타는 것을 방관하고 말았다.
일신의 출세, 조직의 안위가 국가와 국민보다 우선되었을 때 어떠한 재앙이 벌어지게 되는지를, 8월의 무더위 속에서 일본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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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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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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