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최원훈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신입반 담임을 할 때다. 손목에 유난히 자해흔이 많았던 진수(가명)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진수는 폭행 및 공동공갈, 갈취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신입반 교육 기간 동안 수업태도도 좋고 예의바른 태도로 생활했다. 5일 차 되던 날, 진수가 교실에서 과제를 작성하는데 옆자리 동료가 듣기 안 좋은 말을 했다. 진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료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교사들이 제지한 후 진수를 상담실로 데리고 가서 안정을 시켰지만, 진수는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진수의 어머니는 진수가 4살 때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렀다. 아버지는 어린 진수를 들어서 벽에 던지기까지 했다. 진수와 두 살 위 누나는 어쩌다 아버지가 때리지 않는 날에는 더욱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또래들처럼 유치원을 다니지 못해 한글도 제대로 몰랐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남루한 차림이라 아이들이 피했다. 등교 길에 교문앞에 선 진수는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가방을 메고 학교 주변을 맴돌다가 하교 종이 울릴 때 집으로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피하기만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이 좋으면 아이들이 따돌리지 않을 것 같아 죽어라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성적을 상위권으로 올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제일 힘이 센, 노는 친구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수를 툭툭치면서 괴롭혔다. 머리를 때리면서 "이 엄마 없는 XX야! '라고 욕을 했다. 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친구를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 친구는 교실 한 가운데 뻗어버렸다.
진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때렸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진수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노는 선배들이 잘 친다며 진수를 데리고 다녔다. 오토바이 폭주를 뛰고 술집에도 갔다. 후배들에게 돈을 걷어 오라고 협박하여 용돈을 챙기기도 했다.
진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고깃집 홀서빙, 건설현장 일용노동, 신문 배달, 택배 물류센터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고 누나의 학원비도 대줬다.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였지만, 나이가 들고 간경화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챙길 만큼 순한 심성을 가진 진수였다
열심히 살기도 했지만 마음을 잡기가 힘들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응어리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깨진 소주병으로 손목에 자해를 했다. 팔과 가슴의 문신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폭행과 갈취 등으로 소년부 법정에서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상담실에서 나와 마주 앉은 것이다.
상담실의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좋은 추억은 없었니? "
긴 시간동안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얘기하던 17살 진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5살인가 6살 때였어요. 그날 아빠가 제 손을 잡아줬어요. 손을 잡고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녔어요. 놀이공원에 간 것도 아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간 것도 아닌데 아빠가 제 손을 잡고 걸어 다녀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4주 후, 다시 소년부 법정에 선 진수는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받았다. 진수는 소년원에 가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자주 표출했다. 동료들을 폭행하고 교사의 지도에 불응해서 징계를 많이 받았다.
수많은 진수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정을 위한 수용환경과 전문가들의 보호와 교육, 상담과 치료다. 하지만 인권친화적인 수용환경 조성과 개별처우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소년범죄예방 정책에 대한 여론의 공감도와 이해도가 너무 낮다.
이들이 성인범으로 진화하면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용된다. 출소 후 전자발찌를 채워서 5년, 10년 동안 관리·감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높고 회복 탄력성이 큰 청소년기에 보호처분으로 교화하는 것이 합리적·효율적인 범죄예방정책이 될 수 있다.
주요 국정과제인 '촉법소년'과 '소년범죄'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폭력과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몇 년 전에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소녀가 쪽지를 보내왔다. 이제는 20대 청년이 되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안부를 전했다.
"청소년 시기에 나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 아픔을 들여다 봐주세요.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남에게 준 상처에 미안함을 느끼고 보답하는 멋진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아직도 철없고 못나고 가시에 돋쳐 가시를 세우는 아이들이 넘쳐나지만, 정말 그저 아이이기도 해요. 강한 자만 살아남고 돈 많은 자만 살아남게끔 만들어놓은 대한민국 그 자체를 보며 아이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그렇게 찾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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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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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난 소녀가 보낸 쪽지 속 절절한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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