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8월 25일 또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2.25%에서 2.50%로 올리는, 이른바 '베이비 스텝'이었다. 점보 점프(1.00%p 인상), 자이언트 스텝(0.75%p), 빅스텝(0.50%p)까지는 아니지만, 지난해 8월에 0.5%였던 것이 지금은 2.5%가 됐으니 단기간에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베이비 스텝이라지만, 이자 변동에 따른 타격을 받게 될 가계도 적지 않다. 아기 걸음도 많이 하다 되면 결과적으로 빅스텝이 되고 자이언트 스텝이 된다. 이런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진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율로 고생하는 아르헨티나는 현지 시각 6월 17일 49%에서 52%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니, 7월 28일에는 52%에서 60%로 8%p나 올렸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0.25%p 차이에 따라 빅이냐 베이비냐 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더는 무의미해지게 된다.
한국은행이 이렇게 계속 인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속적인 인상 때문인 측면이 가장 강하다. 미국과의 격차 확대를 막아 금리가 높은 쪽으로 달러가 유출되지 않도록 막으려면 부득이한 면이 없지 않다.
물가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베이비 스텝을 해서라도 미국 기준금리를 따라잡아야 하는 한국의 현실은 지난 5월 21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포괄적 동맹을 하겠다는 것은 정치·군사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동맹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 표출이 된다.
공동성명은 "우리의 번영과 공동 안보, 집단 이익 수호에 핵심적인 경제·에너지 안보협력 심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 "질서 있고 잘 작동하는 외환시장을 포함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금융 안정성을 증진하기 위해 양 정상은 외환시장 동향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 나갈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등의 선언을 담고 있다. 금융과 환율 등의 분야에서도 동맹국 사정을 긴밀히 고려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런 약속에 따라 한국은 경제적 희생과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포괄적 경제동맹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4강 동맹인 칩4에 발을 내딛고 있다. 그런데 IPEF와 칩4의 실질적 목적은 중국 따돌리기다.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자칫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에 그만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에 비하면, 경제동맹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철저히 '이기적'이다. 경제 문제에서는 손톱만큼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고 있다. 자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 잘 알면서도 서슴없이 인상하는 데서도 그런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여타 국가들의 기준금리 인상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사실상의 세계 화폐인 달러화의 글로벌 이동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런 인상을 단행할 때는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동맹국 경제에 대한 파급 효과도 고려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니, 책임 있는 세계 국가가가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미국은 세계 지도국가를 자처하면서 외국에 대한 내정간섭도 많이 한다. 석유거래를 할 때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고강도 제재를 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미국의 압박을 받는 최대 이유는 이 나라들이 석유 거래에서 '달러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 정도로 달러 사용을 강제한다면, 달러 흐름에 영향을 주는 기준금리 문제에서도 세계 경제를 고려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자국의 경제적·재정적 필요만을 고려하고 있으니, 미국이 세계 지도국가가 맞는지 한미동맹이 포괄적 동맹이 맞는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