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백남준 기념관.한옥을 리모델링하여 개관하였다.
이상헌
아담한 한옥 내부로 들어서면 백남준의 주요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의 책상과 걸상, 골동품으로 여겨지는 미싱, 네 발 달린 TV, 어린 시절의 백남준이 관심을 보였던 물건 등이 관람객을 반긴다.
기념관을 나와 창신골목시장길로 들어서 봉제거리를 둘러보다 우회전하여 언덕길을 오르면 안양암에 다다른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불교계의 대표적인 친일파 이태준이 주지를 지내며 창씨개명 접수 장소로 이용되었던 절이기도 하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가면 채석장의 흔적이 땅굴로 남아있다. 부조로 새긴 부처상 윗쪽으로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굴이 나온다.
입구 좌측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구한말 때 일제의 스파이로 활동한 배정자(裵貞子, 다야마 사다코)의 이름을 볼 수 있다. 민씨 일가에 반대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흥선대원군 몰락과 함께 처형되고 어미는 충격으로 장님이 되었으며 연좌제에 따라 노비의 삶을 산다. 이후 기생과 여승으로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 등에게 의탁하였다고 전해진다.
▲ 종로구에서 이만한 풍경 더 없습니다 ⓒ 이상헌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밀정으로 키워지게 되는데, 일본어 통역이란 명목으로 귀국하여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기밀 정보를 일본에 넘겼다. 배정자는 노천명과 함께 민족탄압에 앞장선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여러 독립투사를 밀고하는 악행을 저지른다.
안양암을 나와 동네 주민들만 알고 있을 것 같은,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조금만 오르면 산마루놀이터와 돌산마을이 나온다. 제법 지대가 높으므로 동대문 일대를 굽어볼 수 있으며 1980년대의 거리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집 앞에 놓인 평상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장기를 즐기고 있으며 단층집 옥상 위에는 곡식을 널어 말리고 있는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