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유입 쓰레기 차단 시설김정판 어부가 에코피스아시아 이태일 처장, 환경운동연합 이용기 활동가에서 현재 설치돼 있는 바다 유입 쓰레기 차단 시설 현황과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철재
지금 바다 수위가 얼마이고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면 어느 곳에 어떤 형태로 해양 쓰레기가 쌓인다는 걸 꿰차고 있는 것이 그였다. 김정판씨는 이런 특성에 따라 죽방렴처럼 1개부터 3개까지 그물을 설치하면 어렵지 않게 해양 쓰레기를 포집할 수 있다고 봤다. 이렇게 포집해 두면 다시 바다로 유입될 가능성도 적고, 수거도 쉬울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이용기 활동가는 "경험적 과학에 기반을 뒀다"라면서 "해외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쓰레기 포집 시설처럼 전통 기술과 신기술의 조합으로 쓰레기 포집 시설을 만든다면 의미 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김정판씨의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포집 시설 아이디어는 남해군이 반겼다.
남해군 관계자는 그에게 '이거는 되겠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올해 내 설치를 추진해 보자고도 했다고 한다. 사천시 인접한 남해군은 연안 양식장이 많아 육지 기반 쓰레기 유입에 민감하다. 지난해만 관내 하천 입구에 3500만 원을 들여 '바다 유입 쓰레기 사전 차단시설'을 설치했다.
충남도 등에서 벤치 마킹을 위해 현장 견학도 왔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실제 감당 안 되는 물살의 힘에 시설이 기울어졌거나 파손된 현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남해군은 김정판씨의 아이디어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몇몇 사람은 김정판씨에게 같이 사업을 제안했다.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돌리자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거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지구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런 거 갖고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라며 거절했다. 그는 자신이 빚이 있어도, 해양 쓰레기 문제는 돈 보고 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정판씨는 해양 쓰레기 수거를 통해 깨끗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쓰레기 수거 시스템을 통한 어촌 일자리 창출과 수산물 이미지 증진에 따른 지역 가치 상승도 전망했다. 그는 지구적으로 볼 때 태평양 쓰레기 섬으로 유입되는 해양 쓰레기를 줄인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환경 선진국 위상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육상 기인 해양 플라스틱을 예방 활동으로 ▲육상 기인 해양 플라스틱 유형, 시기 영향 조사 ▲지역별 해양 플라스틱 발생 특성 파악 ▲대중 인식 연구(Public Perception Research)를 통해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양 플라스틱 예방사업 ▲하천 등 유입 차단능력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판씨의 그동안 활동이 여기에 모두 포함된다. 특히 대중 인식 연구를 통한 국민 참여 해양 플라스틱 예방사업은 시민과학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는 관찰과 기록을 통해 현재 해양 쓰레기 문제를 깊게 성찰했다. 그리고 지구적 기후위기에 대한 통찰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죽방렴 원리를 활용한 해양 쓰레기 수거 시스템은 실험이다. 실험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실험들이 기반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성공이 아니라 시민과학에 기반한 실험이 중요하다. 그것이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게한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 면적이 프랑스의 세 배에 이른다는 연구다. GPGP 문제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플라스틱 바다>의 저자이기도 한 찰스 무어 선장이다. 무어 선장은 이 발견을 계기로 바다를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에서 해양환경 연구자이자 환경운동가가 됐다.
시민과학자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한국에서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김정판 어부 역시 시민과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