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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윤해영의 '만주 아리랑'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 26] '5족협화'의 성안현 협화회 홍보과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던 윤해영

등록 2022.09.19 15:28수정 2022.09.1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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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기 전 <선구자> 나무패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아래에 있는 정자 <일송정> 안쪽에는 2015년 11월까지 3년간 친일파 윤해영과 조두남이 작사 작곡한 가곡 <선구자>의 나무패가 걸려 있었다.
철거되기 전 <선구자> 나무패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아래에 있는 정자 <일송정> 안쪽에는 2015년 11월까지 3년간 친일파 윤해영과 조두남이 작사 작곡한 가곡 <선구자>의 나무패가 걸려 있었다. 연합뉴스
 
조선총독부는 1929년 12월 민요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선포했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전국을 휩쓸면서 항일의식이 다시 점화되자 취한 조처였다. 아리랑은 지하로 잠복하고 은밀히 불리게 되었다. 또 한 차례 아리랑의 수난기였다. 


일제가 중국에서는 1932년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지 정책을 강행하고자 이른바 5족협화(五族協和)를 내걸었다. '오족협화'는 일본관동군의 지휘 아래 중국의 한족ㆍ 조선족ㆍ일본족ㆍ만주족ㆍ몽골족을 끌어모아 대동아의 화평을 이룬다는 어용기관이었다. 변절한 조선족 출신들도 여기 참여했다. 

'괴뢰 만주국'의 등장과 함께 만주는 더 이상 우리의 독립운동 기지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만주국의 현실은 정치는 물론이고 임금, 취업, 교육ㆍ주거ㆍ배급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과 배제가 '협화' 보다 우선했다. 다민족 간에는 오히려 불신과 증오ㆍ그리고 폭력이 난무했고 힘의 논리가 판을 치는 가운데 결국 우월한 일본인 대 '열등한' 나머지의 노골적인 지배관계만 남게 된 것이다." (주석 1)

어느 측면 국내보다 더 뜨거웠던 만주의 항일 열기는 점차 사그러지고, 그곳에서도 친일부역자들이 속출했다. 한국에서 1970~8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시기에 자주 애창되었던 가곡 <선구자>는 1963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송년음악회에서 불렸고, 이후 기독교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7년간 방송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창원 마산역 앞 정원에 있는 <선구자 노래비>. 가곡 <선구자>는 친일파 윤해영, 조두남이 작사작곡했다.
창원 마산역 앞 정원에 있는 <선구자 노래비>. 가곡 <선구자>는 친일파 윤해영, 조두남이 작사작곡했다.윤성효
 

뒤늦게 가곡 <선구자>가 친일음악인 윤해영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공식행사에서 더 이상 불리지 않았으나,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부르고 있다.


당초 이 노래는 연변의 용정(龍正)을 배경으로 <용정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으나 괴뢰 만주국이 수립되면서 그리고 가사에 나오는 '선구자'가 우리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국의 일꾼이라는 해석이 제기되면서다. 친일음악으로 낙인되었다. 

'5족협화'의 성안현 협화회 홍보과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던 윤해영은 1936년 11월 <재만조선인통신>에 <만주 아리랑>을 발표했는데, 그는 만주의 생활을 "젖줄이 흐르는 기름진 땅" 운운하면서 일제의 괴뢰 만주국을 옹호하였다. 그의 친일 노래는 이외에도 <아리랑 만주> <오랑캐 고개> <낙토 만주> <적토기> 등 다수가 전한다. 


<아리랑 만주>는 친일어용신문인 <만선일보> 1937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선정되면서, 만주지역에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그곳 조선인들은 노랫말과 윤해영의 친일행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불렀다고 한다. 마치 해방 후 한국에서 그의 노래 <선구자>를 애창했듯이.
만주 아리랑 만주 아리랑
만주 아리랑만주 아리랑김삼웅
 


윤해영은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특별 출간한 <반도사회와 낙토만주>에 실린 <낙토 만주>에서는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 / 백 만의 척사(拓士)들이 너도나도 모였네 / 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 / 희망이 넘치누나 / 넓은 땅에서 살으리"라고 예찬했다.

한민족의 혼이 담긴 민요 아리랑을 모독한 윤해영의 <아리랑 만주>는 전기현 작곡, 백년설의 노래로 국내에까지 유행되었다. 총독부는 이를 간섭하기는 커녕 옹호하였다.

"아리랑은 친일로도 끌려갔다. 그러나 아리랑 정신은 끌려가지 않았다. 중국 특히 연변의 조선족은 1930년대 간도 이유민 생활 이래 지금은 2~4세대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국 조선족 자치구의 떳떳한 주인공들이다. 연변의 조선족은 일제가 세운 '아리랑 만주'에다 피눈물을 뿌리면서 살아 남은 끈질긴 우리 동포들이다." (주석 3)

아리랑 만주

 흥안령 마루에 서설이 핀다
 4천만 5족의 새로운 낙토
 얼덜덜 상사야 우리는 척사

 송화강 천리에 어름이 풀려
 기름진 대지에 새봄이 온다
 얼럴럴 상사야 밧들여 갈자

 신곡제 북소리 가을도 길며
 기럭이 환고향 님소식 가네
 얼러럴 상사야 풍년이로라

후렴

 아리랑 만주가 아리랑 만주가
 이 땅이라네. (주석 4)


주석
1> 이해영, <안익태케이스>, 113쪽, 삼인, 2019.
2> <재만조선인통신> 16호, 1936년.
3> <친일인명사전(2)>, 714쪽, 민족문제연구소, 2009.
4> 박민일, <아리랑 정신사>, 264~265쪽.
5> 앞의 책, 261~26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겨레의노래 #겨레의노래_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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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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