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되기 전 <선구자> 나무패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아래에 있는 정자 <일송정> 안쪽에는 2015년 11월까지 3년간 친일파 윤해영과 조두남이 작사 작곡한 가곡 <선구자>의 나무패가 걸려 있었다.
연합뉴스
조선총독부는 1929년 12월 민요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선포했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전국을 휩쓸면서 항일의식이 다시 점화되자 취한 조처였다. 아리랑은 지하로 잠복하고 은밀히 불리게 되었다. 또 한 차례 아리랑의 수난기였다.
일제가 중국에서는 1932년 '괴뢰 만주국'을 세우고 식민지 정책을 강행하고자 이른바 5족협화(五族協和)를 내걸었다. '오족협화'는 일본관동군의 지휘 아래 중국의 한족ㆍ 조선족ㆍ일본족ㆍ만주족ㆍ몽골족을 끌어모아 대동아의 화평을 이룬다는 어용기관이었다. 변절한 조선족 출신들도 여기 참여했다.
'괴뢰 만주국'의 등장과 함께 만주는 더 이상 우리의 독립운동 기지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만주국의 현실은 정치는 물론이고 임금, 취업, 교육ㆍ주거ㆍ배급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과 배제가 '협화' 보다 우선했다. 다민족 간에는 오히려 불신과 증오ㆍ그리고 폭력이 난무했고 힘의 논리가 판을 치는 가운데 결국 우월한 일본인 대 '열등한' 나머지의 노골적인 지배관계만 남게 된 것이다." (주석 1)
어느 측면 국내보다 더 뜨거웠던 만주의 항일 열기는 점차 사그러지고, 그곳에서도 친일부역자들이 속출했다. 한국에서 1970~80년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시기에 자주 애창되었던 가곡 <선구자>는 1963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송년음악회에서 불렸고, 이후 기독교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7년간 방송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