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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제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길 바란다

[주장] 중처법 '경영책임자'서 기업 총수 뺄 수 있는지 법제처에 문의... 부끄럽지 않나

등록 2022.09.22 11:31수정 2022.09.2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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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채석장 실종자 수색 작업 지난 1월 30일 경기 양주시의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 내 토사 붕괴 현장에서 관계 당국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양주 채석장 실종자 수색 작업지난 1월 30일 경기 양주시의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 내 토사 붕괴 현장에서 관계 당국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소방청
 
중대재해처벌법(아래 중처법)의 입법은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수 십 년 간 매일 약 5명의 노동자가 질병과 사고로 사망하는 산업재해의 현실엔 큰 변화가 없음에도 입법 당시 전 사회적인 관심과 공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 유족들의 피눈물이 서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법이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된 지 갓 1년여 가 지난 지금, 벌써 일각에서는 이 법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 더불어 '위헌적 요소'를 강조하며 법을 뜯어 고치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이미 입법 당시부터 축적한 명분은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저의는 법의 적용 범위와 의무 내용을 축소하여 기업 측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임이 명확하다. 같은 취지의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서 상정 된 바 있고,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대놓고 이 법을 고쳐야한다고 발언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중처법이 법률 그 자체로서 매우 뛰어나게 잘 만든 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다고 하여 추한 것이 아닌 만큼 잘 만들지 못했다고 하여 위헌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중처법의 개정 혹은 개악을 말할 때 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명확성의 원칙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주의에 반한다는 것이다. 명확성 원칙의 관점에서 수범자에 대한 형벌 근거가 될 수 있는 법의 명령이 불명확하다는 주장은 일면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 아니하나 모든 형벌 조항이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의무의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행정 형벌의 경우가 그러하고 따라서 유사한 형태의 입법은 이미 수많은 다른 법령에 존재하고 있다는 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중처법 제2조 제9호 경영책임자의 의미 관련 책임범위의 확장은 중처법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윤과 책임의 귀속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 중처법의 가장 중요한 입법목적이라 할 수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사업주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고, 기업은 고작 수 백 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것에 그쳤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전 사회적인 공감대가 중처법의 입법으로 기적처럼 실현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개정은 곧 중처법의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만하며,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계의 입장에서는 이 책임 범위의 문제, 다시 말해 실질적인 경영자, 기업의 총수, 오너 등 위법하다 할 수 있는 기형적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근로자들의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 등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 과업인 것으로 보인다. 법 제2조 제9호의 '또는'의 규정의 의미를 가지고 '선택적인 처벌을 규정한 것'이라는 비상식적인 해석론을 고집해 온 것도 이 핵심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현행 중처법 제2조 제9호의 '경영책임자등'의 규정은 미려하지는 못할지라도 합리적인 해석론이 이미 충분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이다. 즉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a)'과 '이에 준하여 사업을 대표하고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b)'이 각 독립된 의무 주체로서 개별적으로 중처법 제4조, 제5조 등의 의무 수범자이자 처벌적격자이며 따라서 개별적으로 그 의무를 제대로 했는지에 따라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경영책임자등'에 해당하는지는 사업을 대표하는지와 안전 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할 수 있다. 전자는 이미 확고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충분히 해석이 축적된 상법상 회사의 대표기관에 대한 이론과 판례에 따라 해결될 문제이며, 후자는 실질적인 권한 유무에 따라 결정 될 문제이다.

따라서 소위 '면피'를 위한 형식적인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선임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대표자, 경영을 실제 책임지는 자들의 책임은 면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이며 중처법의 입법목적은 물론 형벌의 책임주의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가 법제처에 대해 이른바 '지원 요청'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 되었다. 그 요지는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에 위 경영책임자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담아도 되는지 문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고용노동부에서 법제처에 위와 같은 내용의 문의를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어떤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의 해석이 위와 같이 가능한 경우임에도 굳이 법제처에 시행령을 통한 개정 가능성을 문의 한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고용노동부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는 이 부분에 있어서의 명백한 소관부처이자 주무부처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상정한 개정안의 경우, 중대재해에 대한 문제임에도 고용노동부 장관이 아닌 법무부 장관에게 안전 인증제를 비롯한 해당 형벌의 책임 감면에 관한 권한을 주고 있었다는 점은 심히 부끄럽고 나아가 분노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심지어 최근에는 기업재정부에서 중처법 관련 별도의 용역을 시행하고 개정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고 하며, 언론에서 소관부처에 대한 월권적 행위라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고용노동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하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속된 말로 '쪽팔리는 일'이다.

고용노동부가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법률에 근거가 없음에도 행정입법으로 법률상의 개념을 변경, 보충하는 것이야말로, 명시적인 문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권한과 자격이 없는 허수아비 안전관리총책임자(CSO)를 총수 대신 형벌을 받게 하겠다는 발상이야 말로 죄형법정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가. 고용노동부가 주무관처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변호사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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