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설치한 관련 안내판 뒤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우영우는 장승준을 직장 내 갑질로 신고할 수 있었을까?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3년, 관련 신고 건수는 1만 8906건에 이른다. 이는 제도가 시행된 첫 해인 2019년 2130건, 2020년 5823건, 2021년 7745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고용노동부 보도자료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시행 3년간 피해근로자 회복과 법 준수 분위기 확산에 주력 -법 시행 3년간의 신고사건 처리 결과' 2022.7.14.).
이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괴롭힘이 마치 당연한 직장 문화처럼 통용되던 한국 사회에서 제도를 통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영우는 장승준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지 않았다. 왜일까.
동료들은 영우에게 장승준은 이전 선배였던 정명석 변호사가 아니니 '묻지 않는 말에 답하지 않기, 시키지 않은 일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정명석이 영우를 대하는 태도는 직장 동료로서의 동등하게 영우를 대한다기보다 그저 영우에게 '너그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며, 장승준의 부당한 태도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처세인 것처럼 얘기한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높아졌으나,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자체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우처럼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법까지 만들어 규제하고 있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법의 시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법 위반 없음이 5064건, 조사 불능 혹은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닌 경우로 처리 완료된 건이 8347건으로 가장 많았고 검찰 송치는 292건, 그마저도 기소건은 전체 처리완료건의 0.6%인 108건에 불과했다. 사업장에 개선지도를 한 것도 2500건에 그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뒤 회사나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면, 오히려 불리한 처우를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총 1442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10명 중 4명은 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괴롭힘 신고 뒤 더 커지는 불합리함... 여전히 구멍이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뒤 회사나 노동부에 직접 신고한 사례 331건 중 직장 내 갑질을 신고한 뒤 불리한 처우를 당한 사례가 133건(40.2%·중복)으로 나타났고 괴롭힘이 인정됐는데도 가해자와 분리하는 식의 피해자 보호조치를 회사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조치의무 위반을 겪고 있다는 사례가 249건(75.2%)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4명 중 3명은 회사의 조치의무 위반을 겪었고, 10명 중 4명은 신고를 이유로 보복을 당했다는 얘기다(9월 5일자 <매일노동뉴스> 기사 참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사항에 관한 취업규칙 필수 기재 의무'를 두었으나 어떤 조치사항인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만든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봐도 담당자 또는 담당 기관, 조사 및 조치 의무 이행 기간, 피해자의 알 권리, 피해자 보호 방식 등 필요한 정보는 빠져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관료적 태도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즉 요약하면, 법은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채워야 할 구멍이 많다는 것이다.
법은 신고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명시하고 있으나 근로기준법에 '불리한 처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있다. 괴롭힘이 집단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 피해자가 입증하기 힘들고 불리한 처우도 관련 정보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현행법은 고용노동부나 노동위원회의 구제 절차를 달리 규정하지 않는 등 국가기관의 직접적인 개입보다 기업 내 자율적 시스템을 통해서만 해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용자와의 대면 가능성이 많아 괴롭힘의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피해자의 회복 등 구제 수단에 대한 내용이 미흡하여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별도의 보상을 받기 어려운 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다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돌아가서. 영우에게는 어쩔 수 없이 영우를 배제하고 재판에 참여했으나, 결정적으로 영우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결국 재판을 승리로 이끌어낸 봄날의 햇살 최수연과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권모술수의 늪에서 빠져나온 권민수라는 지지그룹이 있었다. 이들 덕분에 영우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계단 성장하며 '뿌듯함'이라는 새로운 감정의 언어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울타리가 되어주던 정명석 변호사는 건강상의 문제로 업무량이 많은 한바다로 다시 돌아올 것인지 불투명하고, 영우는 앞으로도 장승준 혹은 장승준과 비슷한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를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고, 본인의 사심에 영우를 이용하려 했던 한바다의 대표는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만약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즌2가 나온다면, 그리고 시즌1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의 장승준이 등장한다면, 나는 바란다. 우영우 변호사가 맡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재판을 보게 되기를. 그리고 아주 시원하게 승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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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영우에서 현실판 '직장 내 괴롭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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