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동네 피아노학원에서는 계란을 살포시 쥔 느낌으로 손 모양을 동그랗게 해서 손톱 바로 아래의 살 부분으로 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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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든 악기 연주든 몸을 쓰는 분야는 나쁜 버릇이 들지 않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피아노 또한 연주 자세의 변화에 따라 음색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나는 어릴 때 동네 학원에서 얼렁뚱땅 배우다가 잘못된 연주 자세가 몸에 배었다. 뒤늦게 성인 피아노학원에서 독일 유학파 선생님에게 올바른 손 모양, 타건 방식 및 어깨 힘 빼는 방법 등을 배웠는데, 음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이 중요한 노하우를 둘째에게 알려주기 위해 손 모양과 연주 자세 등의 변화에 따른 음색의 차이를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특히 아이가 관심을 가진 연주법은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펴고 손끝의 살이 많은 부분으로 건반을 누르는 주법이었다.
일반적으로 동네 피아노학원에서는 계란을 살포시 쥔 느낌으로 손 모양을 동그랗게 해서 손톱 바로 아래의 살 부분으로 치라고 한다. 둘째도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그런 연주 자세를 배운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설명한 방식을 직접 해보더니 소리가 훨씬 부드럽고 좋다며 자발적으로 손 모양을 바꿔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피아노학원에서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리라고 엄하게 지적받았나 보다. 스스로 판단해서 더 음색이 나은 연주법을 선택한 건데, 학원에서는 아이의 손 모양이 흐트러진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 후로는 선생님에게 레슨 받을 때만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려 연주하고, 혼자 연습할 때는 손가락을 펴고 연주한단다.
자신의 선택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피아노학원 친구에게 같은 곡을 손 모양 바꿔가며 들려주고선 어느 연주법이 소리가 더 좋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친구 역시 손가락을 편 쪽이 더 듣기 좋다고 말했다며 똘망똘망하게 얘기한다.
뭔가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아이가 손 모양 때문에 피아노학원에서 한 소리 들었다는 얘기를 피아노 카페 게시판에 털어놨다. 그랬더니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카페 회원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대가들도 다들 손에 살 많은 부위로 치라고 합니다. 더 따뜻한 소리가 나고,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요. 사실 어느 정도 손이 펴진 상태가 더 자연스러운 자세이기도 하고요. 물론 강한 소리가 필요할 때라든가 특정한 순간에는 손을 뾰족하게 해서 칠 때도 있고, 빠른 스케일을 연주할 때 약간 구부리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피아노학원에서 계란 쥐듯이 치라고 하는 게 가장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손가락 구부리고 치는 대가는 제 기억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구부린 듯한 자세 때문에 불필요하게 힘을 주고 치게 되기도 하고요."
사실 이런 얘기를 접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손가락을 펴서 손끝 살 많은 부분으로 연주하는 방법을 독일 유학파 선생님에게 배웠다. 그 경험담을 디시인사이드 도이치 그라모폰 갤러리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손가락 끝에 살이 많은 부분으로 터치하라는 것은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노 교수였던 로지나 레빈 역시 강조했던 부분입니다. 사실 로지나 레빈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피아니즘에선 이런 터치, 즉 부드럽게 노래하는 듯한 터치를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로비츠 역시 그렇게도 평평한 손 모양을 고수한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잘 치는 피아노의 기준
아이가 피아노 전공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취미로 즐기더라도 기왕이면 올바른 연주법을 익히기를 바라기에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공자도 아닌 내가 주제넘게 학원 선생님의 지도법에 이견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분들도 자신의 지도법에 확신을 가지고 소신껏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두 가지 주법을 동시에 익히면 더 좋지 않겠냐는 식으로 애써 정신승리하며 상황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세 번이나 녹음한 독일의 거장 빌헬름 켐프의 연주를 둘째와 함께 듣고 있었다. 그 특유의 덤덤함과 담백함 뒤에 깔린 더할 나위 없는 서정성에 젖어 들어 있는데, 아이가 말을 건넨다.
"아빠, 이 할아버지는 살아 있어?"
"아니. 이미 돌아가신 분이야."
"소리가 너무 따뜻하네."
"아빠는 이 할아버지 연주를 들으면 겨울철 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맞아! 정말 그래. 나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게 피아노를 잘 치는 게 아니라, 좋은 음색을 만들어 내는 게 진짜 피아노 실력이라고 생각해."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아빠도 네 생각에 완벽하게 동의한단다! 문득 음색에 대한 딸의 진심을 존중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간만에 바짓단 좀 펄럭여보마. 시간을 내서 아빠랑 동네 피아노학원 투어에 나서자꾸나. 여기저기 물색하다 보면 음색에 대한 딸의 진심에 귀를 기울여주는 곳이 하나라도 있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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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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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모양 때문에... 동네 피아노학원 투어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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