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식민지 조선 사랑하다 추방당한 일본인, 한국은 기억해야"

[인터뷰] 우치노 겐지의 <까치> 역서 펴낸 엄인경 교수를 만나다

등록 2022.11.21 14:51수정 2022.11.21 14:51
0
원고료로 응원
 엄인경 교수
엄인경 교수엄인경
 
엄인경은 고려대학교 글로벌 일본연구원 교수다. 그는 "언어의 가장 고차원적 표현 양식이 문학이며, 문학은 사람 마음을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아직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어로 된 서적을 접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접한 텔레비전 만화나 유명한 대중적 서사가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고 음성적으로 한국 저변에 퍼져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일본문학을 하면 할수록 현재 한국의 그와 그가 속한 사회를 가장 상대화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이라는 거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원에 진학,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문헌을 간직한 일본의 고전문학을 공부하며 시대의 변천과 특성을 인간 개성으로 묘사한 일본문학의 독특함에 매료되었다.

지난 2006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식민지 일본어 문학'의 다양한 자료를 발굴해 백 권이 넘는 자료집을 만들었고 이를 연구하며 번역 소개도 한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창작되고 유통된 일본의 시가문학을 다루는 수업 '한일관계와 일본어 시가문학'으로 그는 최고강의상인 석탑강의상(2020년, 2021년)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문학잡지 국민문학(國民文學)과 한반도의 일본어 시가문학>, <한반도와 일본어 시가문학>, <조선의 미를 찾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 등이 있고, 최근에는 우치노 겐지, 이시카와 다쿠보쿠, 나카하라 주야 등 일본 시인들의 시가집을 완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 그와 지난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그의 최근 번역작 <까치>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대전에 와 교사로 일한 일본인... 조선총독부가 그의 시집 발간 금지한 이유
 
 교사 시절의우치노 겐지
교사 시절의우치노 겐지엄인경
 
- 먼저 <까치>의 저자 우치노 겐지(1899-1944)는 어떤 사람인지?

"그는 일제강점기에 대전과 경성에서 중학교 '국어(일본어)' 및 한문 교사이자 시가를 좋아했던 문학청년이었고, 그의 출신지 쓰시마(대마도)의 위치가 상징하듯 한일의 경계에 살던 인물이었다. 20대 초반의 그는 대전중학교 부임 시절부터 시가 전문 잡지를 창간하고 주재할 만큼 시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는데, 결국 시에 대한 열정과 그 안에 담긴 식민지 '조선'에 대한 애착은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불순하고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교원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으로 영구 추방되는 아이러니와 더불어, 그 요인이 식민지 조선에 가해진 압제를 시로 비판한 '불온함'이었기 때문에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겐지의 어떤 면이 좋아서 그의 시를 번역 출판하게 되었는지?


"십 여 년 전부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간행된 일본어 문헌을 발굴하고 자료를 모으며 연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도자기가 이러한 문헌의 표지에 다수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타인이 발견해낸 한국의 예술과 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926년에 간행된 '조선예술잡지'<아침(朝)>이라는 잡지를 알게 되면서 그 안에서 음악, 미술과 더불어 시가 당시 예술의 세 가지 축이라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잡지의 편집과 조선을 노래한 시의 예술성 및 한반도의 근대시 확립에 힘쓴 그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인물을 추적하면서 그가 간행한 잡지와 시집들도 접하게 되었으며 극적인 생애도 알게 되었다. 특히 몇 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과 그의 시편들을 꼼꼼히 독해하는 과정을 가졌는데, 백 년 전의 한반도와 조선인, 조선풍물이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고 모던한 시도 있어서 번역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1921년 겐지의 부모가 그에게 조선에서 일할 것을 권유해 그는 결국 대전중학교 교사가 된다. 그의 부모는 왜 그에게 조선에서 일하라고 권유한 것인지?

"19세기 후반부터 부산, 제물포, 원산 등지를 중심으로 개항이 되면서 한반도의 일본인 체류자들이 점차 증가했는데, 1910년 이후로는 그 수가 폭증하게 된다. 특히 일본 서쪽은 한반도와 가까운 면도 있어서 그곳 출신들은 향우회 같은 모임을 형성했고 1945년 후에도 조직이 이어진 사례가 많았다. 당시 '외지벌이'라는 말이 유행했듯, 경제적 이유라고 추정된다. 그의 부모는 문방구점을 경영하다 실패했는데, 장남이 사범학교를 졸업해 교사 자격을 갖게 되니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가정 내의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북한 신의주를 거쳐 전주로 와 제면업을 했다."

- 1923년 그의 첫 시집 <흙담에 그리다>가 총독부로부터 발간 금지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왜 일본은 이 시집의 발간을 금지하게 되었나?

"무단정치로 일관하던 일제가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정치로 그 기조를 바꾸게 되면서 언론과 문예활동이 활성화되고 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신문, 잡지가 창간되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 것이 아니라 철저한 검열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흙담에 그리다> 발금 및 압수 처분이라는 사건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시집 최대의 문제작이자 역작은 시집과 같은 제목의 장편시 <흙담에 그리다>인데, 발금서가 된 것은 이 시가 조선의 치안을 방해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시에서는 비참한 운명의 우리를 옥죄는 저주와 고통을 노래하고, 증오와 학대에 폭탄과 총칼로 맞서고 연대하기를 벗에게 권유하기도 하며 이렇게 부르짖는다.

'우리를 저지하고, 뜯어내고, 괴롭힌다고 사유하는 것 / 그것은, 저 물에 이는 거품처럼 덧없는 꿈 / 저 하늘에 솟아올라 새 그림자처럼 사라져 가는 허무한 구름 / 오장육부의 쇠퇴가 잉태하는 망령의 모습 아니겠는가 // 그저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에 잡히는 것에 / 눈을 부라리고, 귀 아파하고, 손길 애먹는 자가 난무하는 모습이여 / 상대에 조종되는 꼭두각시 인형 우리라고 치면 / 악마의 갈채 소리를 듣는 것에 불과하리니.....'

시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악마'가 무엇인지 전혀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총독부는 제 발이 저렸을 것이다. 표현의 수위와 짐작되는 내용을 감지한 당국은 한반도로 건너온 지 2년 남짓한 이 청년교사에게 비상한 관심을 두게 된다. 대전에서 경성으로 올라와 총독부와 면담한 그는, 삭제된 '자식 같은' 첫 시집을 겨우 돌려받게 된다."
 
 까치 책 표지
까치 책 표지필요한책
 
- 1928년 그는 총독부로부터 경성중학교 교사직을 파면 당하고 그 당시 일본인으로서 극히 드물게 '조선 추방'을 선고 받는다. 왜 총독부는 그에게 이렇게 과격한 조치를 취한 것인지?

"<흙담에 그리다> 발금 및 압수, 시인의 항의방문과 삭제된 시집의 회수는 당시<경성일보>에도 상세히 기사화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거치고 그는 일본 여성 시인과 결혼해 경성중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시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은 더욱 강고해졌고, 당시 유명한 조선과 일본 시인들과도 공고한 관계를 갖게 된다. 그는 경성에서 문화교류의 폭을 넓혀 1926년에는 '조선예술잡지' <아침> 창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그해 10월 아내와 동생의 도움에 힘입어 시 전문잡지 <아시아시맥>도 창간했다.

그런데 이 잡지 또한 치안방해로 발매금지와 압수 처분을 받고, 그는 교사직 휴직을 강권 받고 잡지는 종간된다. 역시 수록된 시 내용이 문제였다. 1928년 아내와 공동 편집자로 다시 시 잡지 <징(鋲)>을 창간하지만, 결국 서른 살의 그는 이 시잡지 활동 때문에 교사직을 파면당하고, 일체의 환송회를 불허한 영구 조선추방을 선고받는다. <징>이라는 시잡지의 성격과 수록된 시가 직접적 이유가 되었다."

"1930년대 일본, 치안유지법 내세워 사상탄압 시작... 동생마저 검거돼"

- 1933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시집> 건으로 그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두 달간 고문을 받는데 왜 일본정부는 같은 일본인을 그렇게 혹독하게 대했나?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1920년대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영향력 있는 문학자들을 배출해 낸다. 그러나 1930년대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점차 사회변혁이나 계급혁명을 주장하는 이들을 탄압한다. 치안유지법을 내세워 혹독한 사상 탄압을 실시하게 되었다. <게 공선>으로 유명한 고바야시 다키지 같은 작가는 1933년 경찰서에서 옥사하고, '전향'에 응하지 않는 많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자들이 검거, 구류, 고문 등의 탄압을 받았다. 일본으로 귀국한 겐지는 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에 가입하고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며 <프롤레타리아 시집>의 간행에도 관여했고 전향하지 않았으니 명백한 탄압 대상이었다."

- 1941년 고문 후유증과 생활고 등으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그가 자택에서 요양중일 때, 그의 동생이 일본경찰에게 검거-재검거 등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동생 소지는 그보다 9살 어렸는데, 한반도행과 일본 귀국을 함께 하면서 나이차 많은 형에게 무조건적인 신뢰와 경애를 품었다. 사실 조선 추방의 실마리가 된 <아시아시맥> 잡지에서도 젊은 혈기를 그대로 표출한 소지의 시 작품이 치안방해의 명목에 제대로 타겟이 되어 잡지 발매금지와 압수로 이어졌다. 1938년 결핵을 진단받았음에도 생계 때문에 휴양하지 못했던 겐지는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1941년 급기야 쓰러지게 되고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 같은 시기에 34살이 된 소지는 검거되었다가 '조발성 치매증'을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 퇴원하자마자 재검거 되었다. 아마 검거와 고문 과정에서 정신적 타격을 크게 입은 것이라 추측되는데, 겐지가 살아서 발표한 마지막 시 「미친 자와 미치지 않은 자」가 이 무렵의 작품이라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 오늘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이 왜 한국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약 백 년 전 한반도의 산천과 초목, 항상 백의를 입고 온돌방이 있는 버섯 같은 초가집에 사는 식민지 조선인의 의식주 풍속, 겨울 준비로 산더미 같은 김장을 해내는 모습에 조선 아이들의 천진함까지 겐지의 시에 담겨 있다. 그는 '조선색'으로 강조되던 한반도의 자연과 생활습속의 특성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근대시로 탄생시켰다. 글로컬리즘이 강조되는 오늘날 한류의 역량이 한국적인 것을 담아낸 세계화와 직결되고 있는데, 그 한국적인 것의 원형과 전통이 백 년 전 겐지가 시 창작으로 영위한 측면과 연결된 맥락임을 느낀다.

겐지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특색을 노래하며 제국의 압박과 저주를 표현하다 조선에서 추방당한 일본인이며, <흙담에 그리다>와 <까치>에는 조선에 대한 유대감과 동아시아로 확장된 연대 의식, 가난한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의식의 성숙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일본 문단은 잊어도 우리는 잊으면 안 되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 한일관계는 요즘 특별히 좋지 않은 것 같다. 일본문학 전공자로서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 두 나라와 국민들의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지?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고 드러내는 일은 이해와 우호의 시선을 표현하는 것보다 손쉽고 자극적이며 즉각적이다. 그리고 최근 3년 가까이 정치적 이유와 팬데믹 때문에 왕래가 단절되어 온라인과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만이 확산되면서 악순환을 유도한 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일 간의 정책이나 원칙, 논리와 같은 말들을 내려놓고 막상 서로의 의식주생활을 체험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취향을 접하며, 추구하는 가치관을 듣다 보면 호감도가 올라가고 공감대 또한 금방 형성된다. 대학에 있는 입장이다 보니 한일대학생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첫 대면에서도 한두 시간의 대화만으로도 친구가 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이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며 놀라고 감동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중장년층으로 가면 한일 간의 관광객 교류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형성된다.

우치노 겐지가 조선 사람들을 보고 그 문화적 특성을 시로 쓴 것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친구가 되려는 선의로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묻고 알려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관계의 시작은 가능하다. 좋은 관계 맺기 이전에 도합 2억에 가까운 일본인, 한국인을 균일한 집단으로 상상해 일본인은 이래서 어떻다, 한국인은 저래서 저렇다는 식으로 일괄해 획일적으로 평가, 판단하며 규정짓는 습관을 떨쳐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까치 #우치노 겐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러다 12월에 김장하겠네... 저희 집만 그런가요? 이러다 12월에 김장하겠네... 저희 집만 그런가요?
  2. 2 "무인도 잡아라", 야밤에 가건물 세운 외지인 수백명  "무인도 잡아라", 야밤에 가건물 세운 외지인 수백명
  3. 3 [단독] 쌍방울 법인카드, 수원지검 앞 연어 식당 결제 확인 [단독] 쌍방울 법인카드, 수원지검 앞 연어 식당 결제 확인
  4. 4 "윤 대통령, 매정함 넘어 잔인" 대자보 나붙기 시작한 부산 대학가 "윤 대통령, 매정함 넘어 잔인" 대자보 나붙기 시작한 부산 대학가
  5. 5 악취 뻘밭으로 변한 국가 명승지, 공주시가 망쳐놨다 악취 뻘밭으로 변한 국가 명승지, 공주시가 망쳐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