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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인 딸에게 못다한 말을 고백하다

온 가족이 준비한 첫째 아이의 생일 축하 행사를 치르며

등록 2023.02.09 08:30수정 2023.02.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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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 암진단이 대지진이었다면, 지금은 여진 중입니다. 흔들흔들! 흔들리며 '나다움'을 회복해 가는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첫째 아이의 생일이었다. 딸아이는 자기 생일 전후로 일본 여행을 가겠단다. 우리는 일찌감치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여 촛불 점화를 시작으로 간단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선물도 택배로 딸아이의 집으로 부쳤다. 이것으로 딸아이의 생일맞이 가족행사 끝! 나는 부담 없이 9박 10일 치유여행을 떠났다.

딸아이의 생일 이틀 전, 둘째 아이로부터 가톡이 왔다. 누나에게 생일 축하 영상을 보내려 하니, 음성녹음 편지와 누나랑 추억이 깃든 사진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집에 남겨진 두 아이가 공모한 모양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지냈는데, 두 녀석(막내까지 포함)의 누나 사랑에 마음이 울렁였다. 
 
영덕 칠보산 해질무렵  때마다 다른 빛깔의 하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영덕 칠보산 해질무렵 때마다 다른 빛깔의 하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박미연

딸아, 미안해! 
 

사회초년생인 딸에게 어떤 축하 메시지를 띄울까? 마음속에 담아둔 채 못다 한 말을 고백하고 싶었다. 자판을 두드렸다.


희진(가명)아,
생일 축하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나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너에게는 늘 부족한 엄마였던 것 같아. 난 인생에 정답이 있는 줄 알았어. 그 정답대로 살면 잘 살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너에게도 요구하며 너를 힘들게 했던 것 같아. 근데 인생에 정답은 없더라. 그냥 나답게 사는 게 정답이라면 정답이랄까.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말인데 희진아, 이제는 너답게 살길 바라.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에 매이지 말고,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의 모험을 과감하게 즐기면서 말이야.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 사랑을 바라는 것, 그거 별로 좋은 것 아니더라. 어떨 때는 나답게 사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하니.

에구구, 축하 인사가 설교 말씀으로 변하려 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마지막 한 마디,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야무지게 살아가는 모습이!


원고를 마무리했으니, 이제는 녹음 시작. 마음이 찡하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버벅거린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 매끄럽게 할 자신이 없어서 그중에 나은 것을 보내기로 한다. 다음날 가족들의 음성 메시지와 사진이 잘 버무려진 영상 편지를 먼저 우리들끼리 공유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완성본인 줄 알았는데 수정본이 당도한다. 아이들의 사촌 누나와 조카들이 보낸 축하 영상까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기들이 혀 짧은 목소리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우리 집 막내가 그들을 섭외했다나.

옆지기나 아이들의 축하 메시지는 산뜻했다. 축하한다, 자랑스럽다, 응원한다, 힘이 되어줄게... 근데 나는 왜 거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얹어야 했을까.


첫째 아이는 둘째랑 셋째랑 다르게 지극정성 공을 들여서 키웠다. 처음 해보는 엄마의 역할, 잘하고 싶었다. 반듯하게 키우고 싶은 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를 엄하게 대했다. 안 되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양육 방식이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아이의 날개를 자른 것은 아닐까. 마음 깊은 곳에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 자기답게! 그러면 우리도 이렇게 눈부시지 않을까.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자기답게! 그러면 우리도 이렇게 눈부시지 않을까.박미연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우리 집 아이들의 근황을 물어왔다. 큰 애의 생일을 둘러싼 에피소드와 함께 나의 '미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세상에 100퍼센트 좋은 것도, 100퍼센트 나쁜 것도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

나의 경우만 보아도 암환자로 사는 게 다 나쁘지만은 않다. 재발 전이에 대한 불안감. 건강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다른 영역에서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 그것 외에 특별히 나쁜 게 또 있을까. 

그럼 암 수술 후  얻은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서 장기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세 남자(남편과 두 아들)의 자립 능력 향상.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재미지게 살고 싶다는 삶의 의지를 되찾은 것. 삶의 군더더기를 알아차리는 힘 등등. 

"그래, 맞아! 맞아! 어찌 됐든 우리는 애들 키우느라 최선을 다했잖아!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그게 보통 일이야? 우리는 육아 생존자라고. 우리를 대견하게 생각해야 해!" 서로를 다독였다.

추신, 큰애는 우리가 보낸 영상편지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막내는 누나가 영상 어디쯤에서 눈물이 났는지 궁금해했다. 은근히 자기가 누나를 감동시켰기를 기대하면서. 막내의 마음에 내 마음도 실어본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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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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