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의 상징인 현충문 모습.
김종훈
지난 21일 저녁이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한창 자리가 무르익어갈 때 병원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물었다.
"종훈아, 너는 인생의 목표가 뭐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내 목표? 애국지사 머리 위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가 더 많이 알려져 현충원의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바뀌는 거."
답을 들은 친구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뭔가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좀 더 이름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그런 답을 기대한 거 같은데 기자 생활 10년 한 친구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나온 거다.
당황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현충원에 가서 보면 알아.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현실인지.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목숨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 무덤 머리 위에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들이 잠들어 있어. 그 모습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대로 느껴지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현충원의 불편한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국가공인 친일파, 독립운동가 머리 위에 잠들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 있었지만 이토록 뜨겁진 않았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지금의 목표가 완성됐다. 2018년 중순 <오마이뉴스>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나는 프로젝트의 제안자이자 진행자로 로드다큐 <임정>과 임시정부 투어 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를 완성했다.
그리고 봤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이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 아래 잠들어 있는 현실을.
2005년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발족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4년 반에 걸친 조사 끝에 이명박 정권 당시인 2009년 이완용, 민영휘, 송병준, 김성수(동아일보 창업주), 방응모(조선일보 사주) 등 천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들 중 12명이 서울과 대전 두 곳의 현충원 양지바른 땅에 잠들어 있다.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백선엽이다.
이들 12인의 무덤 중 신태영과 이응준이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장군2묘역이 가장 논란이 되는 장소다. 직선으로 40m 거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묘역과 애국지사묘역, 무후선열제단이 자리해 있다.
"내 목표는 야스쿠니" 외친 신태영이 잠든 곳
1993년 눈을 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 조경한 지사는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백범과 윤봉길, 이봉창, 차리석 등이 안장된 효창공원은 당시 용산구에서 관리하는 근린시설이었다. 애국지사를 효창공원에 모실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 지사는 국립묘지법에 따라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의 무덤과 친일파 묘역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75m에 불과하다.
조경한 지사가 현충원을 기피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애국지사 머리 위에 신태영과 같은 친일파가 잠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