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원 주사실 안내표지
이혁진
항암주사 맞는 날, 외래 한 두 시간 전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는 등 미리 검진할 절차가 있다. 이후 의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기만 하다. 드디어 의사가 나를 호출했다. 모니터를 주시하는 의사의 표정을 살피는 순간은 정적이 흐른다. '특별히 불편하신데 없으세요?' 되묻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는 오늘 항암주사를 맞아도 좋다는 의미다.
진료실을 나와 5층 항암주사실로 향한다. 긴 시간 항암주사를 맞은 후 3주간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고 병원을 나선다. 아내는 수고했다며 내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함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마음 조아리며 기다리는 아내는 안중에 없었다. 고백컨대 간병하는 아내에게 내가 너무 무심하고 이기적이었다.
한번은 암환자 남편을 따라온 부인과의 대화를 병원에서 엿듣게 됐다. 부인이 남편을 타박하고 있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만 그 남편이 불쌍했다. 반면에 아내는 내가 병원 가는 날이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나를 돕는다. 그렇다고 여태껏 내 병을 탓하거나 나무란 적도 없다. 이걸보면 나는 행복한 암환자가 틀림없다.
암세포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도 아내 덕분이다. 의사와 간호사 보다 정작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사람은 아내이다. 지금까지 암투병할 수 있는 것도 간병하는 아내가 곁에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조금 핀잔하면 나는 쉽게 상처받고 삐지기 일쑤다.
대신 아내는 나 때문에 '골병'이 들었다.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힘들고 고생한다는 말 그대로다. 아내는 현재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 아내의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내가 완치된들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부부지만 아내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
그래서 내가 힘이 있는 한 아내를 돕고 있다.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설거지'라는 아내 말이 떠올라 몇 달 전부터 그걸 전담하고 있다. 처음엔 펄쩍 뛰며 반대 했지만 아내가 허락했다. 내 설거지에 아내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아내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어 마음이 가볍다. 하지만 설거지는 여전히 아내 몫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짜증 내는 남편의 설거지가 미덥지 않아서다.
항암주사를 맞고 4시 넘어 아내와 늦은 점심을 했다. 허겁지겁 먹는 아내 모습이 안쓰럽다. 종일 허기로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걸신들린 듯 먹는 표정을 지었다. 엊그제는 아내가 지나가는 투로 "아프지 말라"고 했다. 아내의 지친 상태를 보는 것 같아 짠하다. 뒤늦게나마 아내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터득하고 있다.
갈 길이 멀지만 다짐해본다. 내가 포기하면 안 된다.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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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주사 앞두고 부쩍 느는 짜증, 그걸 견디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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