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은동 쌍굴터널수색조차장을 만들면서 일본 육군 보급창고로 통하는 철길을 내면서 만든 쌍굴 중 하나. 지금은 도로로 사용중이다.
이영천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대륙을 침략하면서, 철저히 경의선을 활용한다. 이 전쟁은 화전동을 크게 변화시킨 기제였다. 수색과 화전을 전쟁 배후기지로 구상하는데, 이는 철도와 연계된 대규모 군사기지와 보급 창고 구축이었다.
서울 용산과 유사한 형태를 계획하고 공사에 들어간다. 80여 년이 흐른 지금, 경의선 변에 당시 전쟁 수행을 위해 설치했던 각종 시설물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용산이 조선 침략과 지배의 무력 기반이었다면, 수색과 화전은 대륙침략의 거점이었다.
1939년 수색과 부산, 평양에 철도 조차장 건설을 시작하는데, 수색이 핵심이었다. 조차장은 내부 선로만 130km로 철도 운송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규모만큼 종사자도 많아 수색역 인근에 별도 철도관사를 지었으며, 용산~수색 간 철로를 증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