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콰이당마오즈(快當帽子) 분교 터
독립기념관
교사 신축 공사는 학생·교사들과 동포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초가을부터 내린 눈이 계속 쌓여 3월 하순까지 녹지 않고 꽁꽁 언 땅을 파고 볏짚을 섞어 토담을 쌓는 기초 공사였다. 공사는 7월에야 끝낼 수 있었다.
1912년 7월 20일(양력)에 100여 명의 동포와 중국인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낙성식이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18개의 교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산허리를 따라 줄지어 있었고, 학년별로 널찍한 강당과 교무실, 내무반에는 기능별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훈련용 총기를 진열하는 총가(銃架)도 낭하에 비치되었다.
교장은 이시영을 시작으로 이동녕·이상룡·박창화·여준·이광 등이 차례로 맡았고, 교감은 김달·윤기섭, 학감은 윤기섭·이규봉 등이었다. 교관은 이관직·이장녕·김창환·김흥 등이었고, 교사는 장도순·윤기섭·이규봉·이정규·이갑수·김석영·김순철·이규룡·여규형·관환국(중국인) 등이었다. 교관 중에 이세영·이관직·이장녕·김창환·양성환 등은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들이다. (주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