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고 있는 김영애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여성위원장지난 4월 9일 열린 '낙태죄' 폐지 2주년 공동행동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영애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여성위원장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 네트워크
"개인적 사정으로 인공 임신중절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후 몸이 좋지 않아 회사에 유·사산 휴가를 신청하였는데 회사에서 이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회사가 이렇게 휴가를 받아주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이 글은 지난달 모 법률 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이다. 이 글에 달린 답변은 '회사가 휴가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였다. 인공임신중지를 포함해 모든 유·사산은 여성에게 출산 못지않은 정신적, 신체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출산에 준하는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하기에 근로기준법 제74조제3항에도 '사용자는 임신 중인 여성이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 그 근로자가 청구하면 유산·사산 휴가를 주어야 한다' 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다만, 인공 임신중절 수술(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경우는 제외)에 따른 유산의 경우 유산·사산 휴가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이 있는 것이다.
또한 2017년 9월부터는 임신·출산과 마찬가지로 유산·사산·조산의 경우에도 건강보험 적용을 통해 치료비 지원이 가능해졌지만 인공임신중절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국회가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과 보건의료체계, 대체입법을 마련하지 않아 여전히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이렇게 건강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고 휴가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더욱 위협한다. '작은 사업장이라 휴가를 쓸 수 없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술을 하고 왔다'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쉴 권리가 없으니 사후관리도 할 수 없다. 2018년 정부에서 발표한 실태조사를 보면 수술 후 적절한 휴식을 취했다는 여성은 47.7%에 불과했고, 8.5%가 자궁 천공, 습관유산, 불임 등 신체적 증상을 경험했지만 60%가량이 치료를 받지 않았다. 특히 인공임신중절수술 경험자의 절반 이상이 죄책감, 우울감, 자살 충동 등 정신적 증상을 경험했지만, 치료를 받은 경우는 10명 중 2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의료기관의 임신중지 거부나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비공식적으로 판매되는 검증되지 않은 유산유도제를 복용해 부작용을 겪거나 임신중지 시기를 놓쳐 건강에 더 큰 무리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신중지를 공식 의료체계에서 보장하고 유산유도제의 도입과 건강보험 적용을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