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하는 이주호21일 오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우성
대통령이 수능 킬러 문항에 대해 깨알 지시를 하고 난 뒤, 우리나라 교육 현장이 난리통이라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전체 교육 현장이 아니라 고등학교가 난리가 났다고 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중에서도 수능을 통해, 즉 대입 정시 전형을 통해 소위 상위권 대학에 진학을 많이 시키는 고등학교에서 난리가 났다고 해야 마땅하다. 대학에 진학하는 데 수능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의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수능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라,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으로 그 어떤 혼란이나 난리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수능보다 훨씬 강력하게 우리나라의 모든 고등학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가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교에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다. 가히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학점을 취득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제까지는 기준 단위수를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했다. 지금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로 인해 이런저런 몸살을 앓는 중이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보장'이라고 한다. 현재 교육과정도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보장하게 돼 있긴 하다. 다만 겉보기엔 그런 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여러 학교에서 발견되는 문제가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됐을 때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눈여겨봐야 한다.
학생 선택권 확대 보장에 못지않게 고교학점제에서 중요한 요소는 '절대평가의 시행'이다. 지난 21일 교육부의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발표에 따르면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는 공통과목(주로 고1 과목) 내신 전면 성취평가제(절대평가)는 적용하지 않는다.
현재는 공통 과목이나 일반 선택 과목은 상대평가, 진로 선택 과목은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있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로 나뉘는 상대평가 과목의 성적이 고교 내신성적의 핵심이고, 이 성적이 대입 학생부교과전형의 절대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비록 공통교과는 상대평가지만 그외 과목에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고교 내선 성적의 변별력이 분명하게 떨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시험 문제 쉽게 내기 경쟁이 펼쳐질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90점 이상 A, 89점~80점 B, 79점~70점 C, 69점~60점 D, 59점 이하 E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대부분 과목의 평균 점수가 80점을 웃돌 것이고 일부 과목은 90점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도 절대평가가 적용되고 있는 진로 선택 과목은 지나치게 쉽게 출제되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를 예로 들어보겠다. 진로 선택 과목은 80점 이상이면 A, 79점~60점이면 B, 59점 이하이면 C로 평가한다. 지난해 우리 학교 기하 과목의 평균 점수가 80점을 훌쩍 넘었다. 수학 교과에 속한 과목의 평균 점수가 80점을 넘긴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상대평가를 적용해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등급을 산출하는 일반 선택 과목인 국어 교과의 화법과 작문 과목의 평균 점수는 70점 정도였다. 수학 과목 평균 점수가 국어 과목 평균 점수보다 10점 이상 높았다. 일반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하 과목 시험 문제를 의도적으로 쉽게 출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소의 편차는 있었지만, 내가 알아본 대부분의 우리 학교 진로 선택 괴목의 평균 점수는 지나치게 높았다. 가급적 학생들에게 A를 안겨주고 싶은 교사들의 배려심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진로 선택 괴목에서 B를 받는 순간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