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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탈로 나라가 기울 때, 삼천포는 성장했다

[삼천포의 성장 이야기-마을이 도시로 ①] 삼천포 사람들의 피와 땀

등록 2023.07.19 11:00수정 2023.07.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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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늘날의 삼천포 모습이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선구동과 동서동에 주로 사람이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삼천포 구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오늘날의 삼천포 모습이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선구동과 동서동에 주로 사람이 살았다.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삼천포 구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 뉴스사천


'역사는 흐른다.'

참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명제다. 개인도 마찬가지거니와, 한 나라와 도시도 세월에 따라 흥망성쇠를 되풀이하거나 변화를 겪는다. 단순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이 진리를 앞에 두고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또, 미래라는 시간은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까.

삼천포의 지난 날을 돌이켜볼 때면 이런 물음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옆 나라 일본이 팽창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운이 저물 때쯤이었다.

일본의 어촌마을이 집단으로 넘어오는가 하면, 신기술과 자본을 앞세운 기업들이 들어왔다. 삼천포라는 땅은 더욱 북적였다. 행정 명칭도 리에서 면으로, 면에서 읍으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인 1956년에는 그 기세를 몰아 '삼천포시'로 승격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오늘날엔 삼천포라는 지명조차 남아 있지 않다. 삼천포항이라는 항구의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1995년에 옛 사천군과 행정통합 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하루아침에 삼천포라는 도시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두고서 지금도 억울함과 애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획보도 '삼천포의 성장 이야기 마을이 도시로'는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삼천포라는 도시가 언제 어떻게 성장했는지 제대로 살피기 위함이다. 이는 지금도 '삼천포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자부심에 깔린 한 단면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삼천포의 성장 시기가 일제강점기 무렵이라는 점은 뼈아프다. 오늘날에도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경제 성장을 도왔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펴는 까닭이다. 심지어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인식이 국내에도 일부나마 있으니 씁쓸하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다.
 
a  옛 삼천포문화원이 1994년에 발간한 '삼천포지명지'에 실린 사진이다. 사천시 동서동 청널공원 방향에서 삼천포 구항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매립과 근대화를 거치기 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1921년 촬영.

옛 삼천포문화원이 1994년에 발간한 '삼천포지명지'에 실린 사진이다. 사천시 동서동 청널공원 방향에서 삼천포 구항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매립과 근대화를 거치기 전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1921년 촬영. ⓒ 뉴스사천

 
그러나 일제가 한반도의 여러 항구를 개발하고 철도를 놓고 도로를 뚫은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와 필요가 있었다. 한반도를 지나 더 큰 대륙으로 뻗어가기 위한 전진 기지를 만들고, 거꾸로 그곳에서 수탈한 자원을 본국으로 실어나르겠다는 게 속셈이었다.


그들이 가진 경제기반과 생활양식을 우리에게 이식해 경제적·문화적 주종 관계를 만들려 했음은 이미 역사적 진실로 잘 드러나 있다. 일제는 그것이 한반도를 더 완전하게 지배하는 방안이라고 믿고 있었다.

100여 년 전 삼천포의 성장도 여기에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있을까.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무너졌어도 이 나라 백성은 살아야 했다. 삼천포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제는 한반도의 전진 기지로써 삼천포항을 개발했다. 경남의 도청 소재지였던 진주의 관문을 여는 뜻도 있었다. 삼천포엔 돈이 끓었고 일자리가 쏟아졌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더욱 몰렸다.

몰려드는 사람들 속엔 일본인도 많았다.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늘어났고, 도시가 커졌다. 그들 중엔 어업 종사자도 많았다. 당시의 일본 어민들에겐 삼천포 앞바다가 '물 반 고기 반'의 황금 어장이었다. 그들에게 삼천포는 곧 기회의 땅이었다.

돈이 도니 금융기관도 생겼다. 양조장과 술집이 늘고,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섰다. 부족한 땅은 바다를 메워 확보했다. 점점 도시계획의 필요성이 커졌다.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전기와 수돗물 공급 요구가 잇따랐다. 이 요구는 곧 실현됐다. 항구에는 정기 여객선이 들어왔다. 머지않아 철길 만드는 일도 시작했다.

삼천포라는 도시는 그렇게 성장했다. 비록 일제가 주도했으나, 여기엔 삼천포 주민들의 피와 땀이 녹아 있었다. 온갖 세금에 노동력을 댔다. 특히 도로를 놓는 일에는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돈 한 푼 받지 않은 채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

반대로 일본인 자본가들은 리아스식 해안을 메워 농지로 만들거나 전기·운수·양조·정미·부동산업에 뛰어들어 큰 부를 쌓아 나갔다. 삼천포 주민들로선 그만큼 부 또는 부를 쌓을 기회를 잃은 셈이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 찾아온 삼천포의 성장은 누군가가 베풀어 얻은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모두의 성장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요, 그들이 함께한 시간이며, 쌓은 노력이다. '삼천포의 성장 이야기 마을이 도시로'가 무게를 두는 대목이다. 
 
a  국토지리정보원이 소장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삼천포의 옛 지도. 개발과 매립이 본격화하기 전이라 해안과 하천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소장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삼천포의 옛 지도. 개발과 매립이 본격화하기 전이라 해안과 하천의 옛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 뉴스사천

 
100년 안팎 전의 옛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더 살필 건 그보다 더 옛날의 삼천포 역사다. 다만 사료로 전해오는 정보가 부족하니 2003년에 사천시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사천시사>와 1994년에 삼천포문화원이 발행한 <삼천포지명지>의 도움을 받는다.

이에 따르면 삼천포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특히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의 터에서 나온 유적과 유물은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 준다. '고대 국제 무역항'이란 별칭을 가진 늑도 유적에서는 철기시대의 유물이 대규모로 쏟아진 바 있다.

삼한시대에는 변한, 삼국시대에는 사물국과 소가야에 차례로 속했다고 추정된다. 한때 백제의 세력권에도 들었다가 신라로 통합됐다. 통일신라 시기엔 사물현에 속한 각산향으로 불렸다. 나중에 사물현이 사수현으로 바뀌었을 때도 각산향이란 이름엔 변함이 없다. 고려 초기인 현종 2년(1011년)에 사수현이 사주로 바뀔 무렵엔 각산향과 함께 말문향이란 이름도 등장한다.

이 각산향(角山鄕)과 말문향(末文鄕)은 현종 9년(1018년)에 이르러 진주목의 월경지가 된다. 월경지란 '경계 너머의 땅'이란 뜻으로, 행정의 관할 구역에서 떨어져 다른 군현 사이에 있는 땅을 일컫는다. 즉, 이 땅을 진주에서 관리한 셈이다.

말문향·각산향은 조선 시대에도 진주의 월경지로 남는다. 세조 12년(1466년)에는 삼천진(三千鎭)이 설치되었다. 이후 성종 시기에 말문향과 각산향은 말문리와 각산리로 이름을 바꿨다가 말문리로 통합된다. 철종 1년(1864년)부터는 말문면으로 불렸다.

고종 때인 건양 원년(1896년)에 말문면이 삼천포면, 문선면, 남양면으로 나뉜다. 이때도 여전히 진주군 소속이다. 광무 10년(1906년)에 삼천포면이 사천군에 편입돼 수남면이 된다. 문선면과 남양면은 고성군에 이속되었다가 문선면만 곧 사천군으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남양면이 사천군에 다시 편입됐다. 1918년에는 수남면과 문선면을 통합해 삼천포면이라 불렀다. 1931년에 삼천포읍으로 승격했으며, 광복 뒤인 1956년에는 남양면을 합하여 삼천포시가 되었다.

이처럼 삼천포의 역사는 오래됐을 뿐 아니라, 지명과 그 관할 관청에 있어 변화가 심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고속 성장의 길을 걷게 된다. 앞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대목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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