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책상 앞에서 작업 중인 류승희 작가
류승희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 시간은 자매에게 경험의 장소이며 기억의 매개가 된다. 자매는 기억 속에서 책, 도서관, 엄마, 책장을 공유한다.
자매는 힘들 때 책을 찾는다. 동생 미주는 언니 우주가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을 때 책을 선물한다. 언니 우주는 공무원이 되고서 사회생활이 힘들면 서점에 가서 책을 읽는다. 책은 자매에게 소통의 수단이다. 이 만화에서 책은 소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세 번째 주인공이다.
"저도 힘들 때 책을 읽어요. 제가 좋아했던 책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만화에 등장시켰어요. 원래도 책을 좋아하지만 만화를 그리려고 읽는 책도 있어요."
자매는 책과 함께 추억을 공유한다. 류 작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추억의 공간은 책이 있는 곳이다.
"책에서 자매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피해 도서관으로 가요. 제가 다녔던 도서관을 찾아서 그린 거예요. 시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강서구로 이사 왔어요.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거예요.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이 집에서 5분 거리인 도서관이라… 어렸을 때 도서관에 많이 갔었어요. 10대 때도, 20대 때도, 첫 만화를 준비할 때도 도서관에 다녔죠. 그래서 도서관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자매의 책장>에서도 도서관은 자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에요."
도서관은 성장 공간이다. 사실 자매를 키운 건 엄마다. 엄마의 가방 안에는 항상 가족을 위한 반찬이 담겨있다. 책에는 '그 안(엄마의 가방)에 꾹꾹 눌러 담긴 엄마'라는 문장이 나온다. 엄마는 집안일과 살림을 위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요.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맞벌이를 해도 여자가 아이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이 둘을 기르며 그 사연을 책으로 냈어요.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라는 만화책이에요. 아이를 키우느니라 경력이 단절된 엄마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보통 경력 단절은 20~30대에 생기지요. 보통 엄마의 경력 단절은 기회의 상실이죠. 어머니와 아버지의 희생은 좀 더 다른 것 같아요."
가족은 류 작가가 다루는 주요 소재다. 그렇다면 자매와 책장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매의 책장> '겨울' 편에는 자매끼리 책장을 공유한다.
"우리 언니는 책을 많이 읽어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직원가로 책을 많이 사 왔어요. 언니가 <토지>, <태백산맥> 이런 책들을 사 왔어요. 보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언니가 리커버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나머지 남은 책 한 권을 저한테 줄 때가 있어요. <자매의 책장>에서 자매끼리 책을 주고받는 장면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어요."
자매끼리 주고받은 책에는 영수증이 꽂혀있다. 작가는 영수증을 버리지 않는다.
"가끔 제가 언니에게 준 책에 영수증이 꽂혀 있어요. 저는 손에 잡히는 거 뭐든 책갈피로 써요. 일상에 디테일을 만화에 살려봤어요."
영수증은 자매의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고, 책갈피가 되고 메신저가 된다. 언니가 산 책을 읽고 동생이 읽었다는 사실은 영수증이 보증한다. 언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도 알 수 있다. 이것 외에도 작품의 디테일은 작가의 일상 속에서 캐낸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배경, 비 온 뒤 수면 위에 비치는 풍경, 날씨의 변화 등 어느 것 하나 작가가 보지 않은 것이 없다.
"<자매의 책장>에서는 장소에 특히 신경 썼어요. 영화에서 인물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와도 거기 안에서도 어떤 느낌을 받잖아요. 사실 별도로 인식하고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어떤 색이나 모양도 작품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 없죠."
말이나 글보다 와닿는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