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평문화 나누기: 함께하는 교사 공동체’ 안내 책자
희망제작소
학생-교사-학부모 서로 존중하는 '3무3행' 약속
- 혁신학교인 보평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앞서 말씀하신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 만드는 민주적인 교육공동체'를 구현하고자 애쓰셨어요. 당시 경험에서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당시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셨는지요.
"혁신학교에서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를 풀 때는 교사와 학생들 간의 상호존중과 교수학습 관계 정립이 먼저라는 인식으로 접근했어요.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토론을 통해 규칙을 만들고 실천하면서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2009년 개교 때부터 시작한 보평초의 '보평문화 나누기: 함께하는 교사 공동체'는 교사들이 함께 만든, 보평초 교사공동체의 규범과 문화를 담고 있는 안내 책자예요.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학생들을 대하고, 민주적인 학급을 만들기 위해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수업방해 학생은 어떻게 지도하며,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요. 공립학교는 교원순환제로 매년 교사의 4분의 1가량이 바뀌기 때문에, 새로 부임해온 교사들이 책자를 매개로 보평초 교사들의 규범과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학습하게 되는 거죠.
보평초에는 또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만든 공동체 생활강령인 '3무3행'도 있어요. 교사들의 3무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으면 안 되고, 체벌을 가해서는 안 되고, 수업에 태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 3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고 모두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상세한 학습 안내와 안정된 학습환경을 조성하고, 모든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학부모의 3무는 일과시간에는 교실출입을 하지 않고, 지정된 급식 외에 음료·다과를 학급에 제공하지 않고, 청소나 미화 등의 목적으로 학교출입을 하지 않는 것, 3행은 경쟁보다 협력을 통해 배우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며, 학부모 상담과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학부모지원단에 가입해 우리학교 '모든' 학생을 위해 봉사한다는 내용이에요. 교장이 듣기 좋은 말을 써놓은 게 아니라, 이런 규범을 지켜야 할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만들고 지키는 행동강령이에요. 물론 13년이 지난 이 규범도 이제 시대 상황에 맞게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되는 학생의 생활지도는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담임교사의 학급 생활교육이 우선되고, 다음은 학년군 부장 교사가 책임을 맡는 학년생활교육협의회, 그리고 학교 차원의 생활교육(선도)위원회를 거쳐 마지막 4단계가 교육청 학교폭력위원회예요. 특히 학년군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생활협의회가 중요한데 각종 생활지도가 필요한 사안에 대한 학생의 교육적 지도 방법을 정하고 공동실천을 통해 학교 규범과 문화로 자리 잡도록 합니다. 또한 학교 차원의 생활교육위원회를 활성화하여 학교폭력위원회 사안을 최소화하고 교육적 대응을 통해 가정과 연계지도 방안을 모색합니다.
학생생활교육위원회는 교감, 생활부장교사, 학년(학년군)부장교사 포함 5-6인으로 구성되는데, 학칙위반 행위와 교사의 생활지도를 따르지 않은 중대 사안, 교사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를 모두 다루어야 하고 징계수위를 결정하고 심리치료와 상담을 명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징계는 생활교육(선도)위원회에서 담당하지만, 과제 부과나 캠페인 참여, 청소, 성찰문 작성과 같은 '교육벌'은 담임교사가 부과할 수 있도록 했어요.
보평초등학교가, 또는 혁신학교가 문제의 해답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혁신학교에서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 사례가 현저히 적었던 이유를, 지금 다시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봐요. 학생과 교사 사이에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학부모가 교사를 대하는 태도와 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에요. 악성민원을 하고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가 혁신학교에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다양한 학부모 모임이 활발하면, 과도한 이야기와 행동을 하는 학부모를 다른 상식적인 학부모들이 막아내고 걸러내요.
나는 학교가, 스스로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교과를 배우고 학력을 신장하는 것, 당연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자유로운 개인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태도와 규범을 배우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요.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대책으로 자꾸만 인성교육과 심리상담을 이야기하는데,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는 행동을 바꾸는 데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라'는 식의 전통적인 품성 교육이나 상담과 같은 개인적 차원의 치유와 회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국회에서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되고 교육부는 '교권 회복과 보호를 위한 종합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교육 현장에 변화가 있을까요?
"뜨거운 여름, 광장에서 지속된 집회에서 상처와 분노, 공감 속에 동료 교사들과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꼈던 교사들이 학교 일상으로 돌아와서 마주치는 현실은 크게 달라져 있진 않을 거예요. 법이 바뀌고 교육부 방침이 달라진다고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교사들이 불안과 무기력, 고립감을 느낄 것이 염려돼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학사운영에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이 많아지면 이것이 곧장 교직문화의 위기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교사들이 학교 공동체 안에서 동료성을 바탕으로 치유와 회복 그리고 교사 자존감과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학교장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학교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요.
바뀐 법과 지침에 맞춰 학교별로 학칙개정이 이루어지겠지요. 이 과정이 문제학생 분리지도, 민원처리 전담팀 구성과 같이 폭탄 떠넘기기식 해결책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학교 공동체의 규범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었으면 해요."
각주1) "공교육 혁명, 남한산 초등학교" <한겨레> 2005.09.04
각주2) 1995년 5월 31일 김영삼 문민정부가 권위주의 시대의 위계적이고 공급자 위주인 교육체계를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 교육체계로 바꾸겠다는 목표로 단행한 교육개혁. 이후 2년여에 걸쳐 120개 교육 정책이 발표·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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