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치유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 교장·정신의학과 전문의.
희망제작소
- 새로 펴내신 책 제목이 <괴물 부모의 탄생>인데요. 집필 기간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이 문제에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괴물 부모'는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자기 자녀의 이익만 생각해서 악성민원을 하는 부모집단을 가리키는 국제적인 용어예요. 우리나라에선 (학부모 민원에 의한) 담임교체가 4~5년 전부터 중요한 교육계 이슈였는데 전면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반면 일본이나 홍콩에선 10여 년 전부터 학급 붕괴나 학교 공동체 붕괴의 배경으로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 괴물 부모) 문제가 지목됐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작년과 올해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져서 올해 초 선생님들과 괴물 부모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조금 보충해서 이번에 책을 냈어요."
- 괴물 부모가 개인의 인성·품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폐라고 진단했어요. 괴물 부모가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일본과 홍콩에서 시작된 괴물 부모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어요. 교육의 상업화, 서비스화와 함께 소비자(학생·학부모) 중심주의와 성과주의가 심해졌지요. 두 번째는 학벌경쟁인데, 일본과 홍콩도 학벌경쟁이 심한 사회였지요. 우리는 일본·홍콩보다 더 극심한 학벌경쟁을 완화하지 못하면서 더 지속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교육의 소비자화와 극심한 학벌 경쟁 속에서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 됐고 이것이 결국 저출생으로 이어져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에 대한 집착과 기대가 커지게 된 거죠.
또 다른 요인으로 아시아적 가부장제 사회의 부정적 영향을 들 수 있어요. 아시아 국가들은 소득수준과 사회수준에 비해서 남성의 육아참여가 굉장히 부족하다 보니 이른바 '독박육아'의 실질적 주체가 엄마가 되고, 일본에선 '모자일체화'라는 말까지 생겨났어요. 엄마가 아이와 오랫동안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결과 자기 자녀에 대한 집착, 자기 자녀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점이 형성되는 일군의 부모집단이 생겨난 거죠."
'하나뿐인 내 아이'에 대한 집착… '성공 우울증' 겪는 자녀
- 괴물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나요?
"괴물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내 자녀 지상주의, 내 자녀 중심주의라고 하지만 막상 그 자녀 입장에선 부모의 강요와 통제 속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야 하거든요. 결국 자녀 중심이 아니라 자기(부모) 중심인 거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개성을 빼앗기고... 어려서는 말을 좀 듣지만 청소년기에는 부모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가짜로 부모 말을 듣는 척하기도 하고, 괴로워서 마약에 손을 댄다든지 게임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고요.
일본에서 일어난 무차별성 범죄의 가해자 중 일부가 괴물 부모의 자녀였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일본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서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부모가 바로 괴물 부모였어요. 범죄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비슷한 사례를 진단하고 분석하면서 '괴물 부모의 양육방식이 부모 살해로 이어질 수 있구나' 하는 보고가 있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괴물 부모가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아이가 자랐다고 해도, 겉보기엔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아주 공허하고 우울할 수 있거든요. 무언가 성취는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괴로워하는, '성공 우울증'을 겪는 괴물 부모의 자녀들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 괴물 부모들 때문에 고통받은 교사 여러분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교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교권침해 문제 해결을 촉구했어요. 오랫동안 관심 가지셨던 문제인 만큼 이번 일을 지켜보는 마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저는 문제가 된 학부모들의 행동이 '교권 침해' 행위라기보다는 '공동체 침해' 행위라고 생각해요. 학급이라는 공동체에서 교사가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없도록 했다는 점에서 '교권'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교권을 넘어 공동체를 침해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는 거죠.
몇 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 부모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선생님들이 피폐해지고 다른 아이들이 불공정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침해하는 거니까요. 이번 책의 부제를 '공동체를 해치는 독이 든 사랑'으로 정한 것은 그래서예요.
내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자유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아이들이 민주주의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 서로 협력하는 것,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모인 사람들과 약속하고 정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거라는 인식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또 지금 아주 중요한 운동은 학부모들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괴물 부모와 같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내 자녀 지상주의를 대적할 공동체 주의와 협력에 기초한 학교 운영을 주장하는 학부모 운동이 더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3주체, 교사, 학생, 학부모들중 교사와 학생의 권한이 강화되고 특히 학부모님들이 자녀의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요. 이번 일이, 우리가 공동체를 되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소수 엘리트 중심 교육에서 학습 공동체를 지키는 교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