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성
이날 배우를 맡은 발달장애인들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이다. 야학 수업 도중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들며 춤추고 노래하다가 공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승연과 승미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면서 야학에 다닌다. 재형과 지용과 주희는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있는 지원주택(임대주택과 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형태)에 산다. 거주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다섯 명 모두 노들야학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속해 있다. 현재 노들야학 학생 80여 명 중 30명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로 일하고 있다.
이름부터 생소하다. '일자리' 앞에 '권리'와 '공공'이 붙었다. 그러나 단어 자체에 힌트가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중증장애인들이 1년 계약직으로 일주일에 15~20시간씩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화예술', '장애 인식개선', '장애 권익옹호' 세 가지 직무로 설명되지만, 쉽게 말하면 춤추고 노래하고 캠페인·강연을 하며 장애인 권리를 알리는 '노동'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만들었고, 2020년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제도화했다. 이후로 경기도와 전남 등에서도 같은 취지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일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어떻게 일을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국가와 지자체가 인권의 담지자로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인식 제고 캠페인을 벌일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캠페인을 통해 저상버스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공공기관에서 장애인 권리 강연을 하며, 문화예술을 매개로 장애인 '노동권'을 알린다. 얼핏 보면 급진적 상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중증장애인들은 무대에서, 거리에서, 연단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공연 1시간 전 리허설 때 승연에게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의미를 물었다. 승연은 "월급을 통장에 넣어두는 게 좋아서", "열심히 모은 돈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고 싶어서" 일을 한다고 했다. 승연을 조력하는 창현은 '일하는 중증장애인'의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떠올렸다. "중증장애인이 일하고 돈을 벌어 자립하고 스스로 미래 계획을 세워나가는" 모습은 누구나 바라는 삶이자 일상이었다.
우리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니